지난 95년, 청주 제2공단에 새 둥지를 튼 미래산업에 비상이 걸렸다.

대통령이 공장을 시찰한다는 소식이 느닷없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통령을 편히 모실 공간이 없다는 점이었다.

응접실도 없고 사장실도 창고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정문술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따로 준비할 게 있나.

청소나 깨끗이 하자구.

대통령이 뭐 별건가"

반도체 제조장비 국산화로 벤처기업 신화를 일으킨 미래산업.

그 미래산업을 이끌고 있는 정문술 사장은 이렇듯 "거품"이 없다.

겉치례라면 질색이다.

94년 천안공장으로 옮길 때에도 테이프 커팅 조차 하지 않았다.

"일초가 아쉬운 사람들이 남의 공장에 모여 테이프나 끊고 히히덕거리는
건 시간낭비다.

화환을 보내기 위해 쓰는 돈도 아깝지 않은가"

하지만 그는 헤픈(?) 사람이다.

연구원에게는 회사돈을 먼저 갖다 쓰라고 하고 경리부에는 달라는 대로
내주라고 지시한다.

연구목표는 연구원 각자가 스스로 정하도록 하며 업무보고를 하려는 사람은
되려 해고시키겠다고 위협(?)한다.

보통사람의 눈엔 "회사 말아먹을 사장"으로 보이지만 그는 성공했다.

어찌보면 그는 실패한 인생이었다.

나이 마흔에 18년간 몸담았던 공직에서 내쫓겼다.

작은 공장을 인수했지만 퇴직금 절반을 날리고 자살까지 생각해야하는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독특한 경영철학을 실천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
도전했다.

"왜 벌써 절망합니까"(청아출판사)는 그가 직접 쓴 자서전격의 경영지침서다

실패와 좌절을 딛고 우뚝서기까지의 행로를 에피소드를 곁들여 풀어내고
있다.

그가 죽음의 문턱까지 가보면서 체득한 "정문술식"경영의 핵심은 "관행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끈질기게 해보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거꾸로 경영"이라고 정의한다.

첫째는 직원을 1백% 믿고 맡기는 "신뢰경영"이다.

필요한 인재는 직접 키워 쓴다는 "텃밭경영", 어려울 때에도 한곳을
끈질기게 파고 드는 "시추경영", 서로를 숨김없이 보여주며 일하자는
"도덕경영"도 있다.

남다른 창의력으로 승부해야한다는 "창조경영",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모험을 즐기는 "벤처경영"도 거꾸로 경영의 주요 내용이다.

그는 이같은 경영방식이 별난 게 아니라고 쓰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상식적이고 올바른 경영방식이란 설명이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장사를 하려면 사기꾼이 되어야한다" "배신과 공격만이
살길이다"란 인식이 횡행하고 있다고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그는 이 잘못된 인식을 깨뜨리기위해 자기식의 "복수"를 해왔다고 말한다.

그 복수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기업과 기업가가 그놈의 "돈"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복수의 끝이라고 그는 강조하고 있다.

< 김재일 기자 Kji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