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회장은 "재계 총리"로 불린다.

한국 민간경제계를 대표하는 영광된 자리다.

그러나 영예와 명성 못지 않게 부담도 많은 직책이다.

재계를 대표해 얘기하다보니 정부의 미움을 사는 일이 적잖다.

회장을 맡는다고 해서 보수는 나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전경련이 특별한 일을 벌일 때는 특별회비를 내야 한다.

전경련은 지난 61년 한국경제인협회로 출범한 이후 김 회장을 포함
모두 9명의 회장을 배출했다.

61년 초에 만들어진 한국경제협의회(회장 김연수)를 포함하면 역대회장은
10명이다.

출발부터가 시련이었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적잖은 경제인들이 부정축재혐의로 구속됐다.

이병철 삼성창업주는 당시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본가들을 감옥에 놔두면
어떻게 하느냐"며 군사정부를 설득했다.

풀려난 기업인들은 각각 국가기간산업 발전을 위한 역할을 맡기로 하고
한국경제인협회를 만들었다.

초대회장은 이병철 회장이 맡았다.

이 회장에 이어 이정림 대한유화회장이 2,3대 회장을 맡아 64년까지
전경련을 이끌었다.

울산공단과 한국수출산업공단(구로공단) 설립을 건의하는 등 활발한
정책대안을 제시했다.

이어 김용완 경방회장이 5대에 이어 9대부터 12대까지 회장을 연임,
총 5기 회장을 맡았다.

김 회장은 72년 8.3사채동결조치 건의에 앞서 경방이 갖고 있던 노른자위
부동산을 모두 처분하는 모범을 보이기도 했었다.

6~8대 회장은 일제강점기간 금융조합이사를 지낸 금융계 인사인 홍재선씨가
맡았다.

현대의 창업주인 정주영 명예회장은 77년 13대회장에 취임, 총 11년간 5기
연임 회장을 맡았다.

정 회장은 5공초기 정권의 퇴진압력에도 불구하고 "회원들이 뽑아준
회장이라 마음대로 그만 둘 수 없다"고 버틴 일화로 유명하다.

87년 구자경 LG명예회장이 18대 회장을 맡았으나 6.29 선언 이후
노사분규의 와중에 재벌에 쏟아지는 비난을 한몸에 받으면서 단임으로
임기를 끝냈다.

문제가 됐던 구 명예회장은 발언은 "차라리 태국에서 사업을 하는게
낫다"였다.

이후 국무총리를 지낸 유창순씨가 이어 받아 19,20대 회장을 지내면서
정부측과 원만한 관계를 정립해 나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종현 SK회장은 93년 2월부터 21대 회장으로 전경련을 맡아 3기연임
회장직을 수행하다 23대 임기를 몇개월 남긴 지난달 별세했다.

최 회장도 재임기간 동안 정부의 업종전문화, 소유.경영분리 정책에
정면 대응하다 SK그룹이 세무조사를 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

쌀시장 개방 불가피론을 폈다가 농민단체로 부터 지탄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최 회장이 신념을 갖고 강조해온 "글로벌라이제이션"
"시장경제주의 정착"등의 이념은 이제 재계의 상식이 됐다.

< 권영설 기자 yskw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