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정 이지함선생의 사상과 철학을 얘기함에 있어 첫째로 언급해야 할 게
무얼까.

일단 그의 출생과 성장배경에서 출발하도록 하자.

선생은 중종 12년(1517) 충남 보령에서 출생했다.

고려말 삼은중 한 분인, 한산 이씨의 시조 이색의 후손이다.

출생부터 범상치 않아 신비스러운 정기를 타고 났으며 신체조건이
보통사람에 비해 월등히 좋은 편이었다고 한다.

어려서 조실부모했기 때문에 큰형 지번 밑에서 글을 배웠다.

뛰어난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음에도 과거시험에 응시하지 못한 불행한
선비로 분류된다.

큰 형의 과거급제가 우선순위였고 막상 기회가 왔을 때는 사관이었던 친우
안명세의 죽음으로 실기했다.

처가와 관련된 역모사건을 피해가기 위해 마포 강변의 집뒤에 토굴을
파고 그 위에 정자를 지어서 거처했기 때문에 토정이라는 호가 붙게 되었다.

막연히 토정비결을 지은 도사 정도로 인식이 되어오던 그를 오늘날
재조명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한가지 단초는 야인으로 머물던 불행한 지식인이었음에도 세상을 향한
근심어린 애정을 끊임없이 발산했던 숨은 영웅이라는 것이다.

토정비결을 보면 주역 64괘는 상괘 8개와 하괘 8개가 조합되어 만들어진다.

그리고 여섯개의 효가 변하여 384변의 체계를 만든다.

그런데 토정비결은 상괘 8개, 하괘 6괘, 그리고 변효가 셋으로 144변을
이룬다.

복잡다단하게 변화하는 세상의 이치를 주역괘 전부를 다 동원해도 해석하기
힘든 판인데 그보다 턱없이 부족한 체계로 설명하려하니 맞을 리가 있나.

그래서 연초 세시 풍속 정도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실제 역사적으로 토정비결을 이지함 자신이 저술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찾아보기 힘든다.

혹자는 적중율이 너무 높기 때문에 혹세무민을 염려한 선생이 의도적으로
맞지 않게끔 흐트러 놓았다는 설도 있지만 말이다.

성철재 <충남대 언어학과교수/역학연구가 cjseong@hanbat.chungnam.ac.kr>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