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극복한 '세계의 CEO'] (13) '월마트' 샘 월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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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액 1천1백79억달러, 종업원수 82만5천명.
세계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의 기업 사이즈다.
매출액은 우리나라 1년 예산의 2배에 해당한다.
GM, 포드, 엑손에 이어 미국 4위다.
종업원 수는 미국 우정공사(우체국)에 이어 2위 규모다.
매주월마트에 들러 쇼핑하는 인구만도 전세계 4천만명.
미국의 한 시골잡화상을 이런 거대 유통업체로 성장시킨 인물이 월마트
창업주 샘 월튼이다.
미국인들에게 고 월튼 회장은 항상 미소짓는 "샘 아저씨"다.
그러나 이런 푸근한 미소뒤에는 "경쟁이 없이는 오늘날의 월마트가
없었다"는 그의 냉철한 비즈니스 철학이 있었다.
45년 월튼 회장은 벤 프랭클린이라는 잡화점체인을 운영하는 지역 소매상과
계약을 맺고 아칸소주에 싸구려 상품을 파는 잡화상을 인수한다.
바로 월튼 회장이 소매업에 첫발을 내딛게 되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월튼 회장은 상점 운영에 대한 노하우를 터득한다.
가격을 낮추면 판매가 늘어나고 결국 더 많은 이윤을 남길수 있다는 할인
판매전략, 인구 1만명을 넘지 않는 도시에서도 할인점이 충분한 사업성을
갖고 있다는 소도시 중심의 진입전략.
이런 아이디어가 모두 이때 싹튼 것이다.
월튼 회장이 할인업 진출을 결심한것도 바로 이때다.
K마트, 울코, 타깃 등 할인점이 잇달아 문을 연 62년.
할인점 개설붐 속에서 월마트도 1호점을 열었다.
이때 내건 문구가"우리는 싸게 팝니다"와 "고객의 만족을 보증합니다"였다.
이들 철학은 아직도 월마트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싸구려 잡화 체인점들이 대거 창고형 할인점으로 전환하던 혁명적 변화의
시기에 월튼 회장은 이미 유통업의 핵심 성공열쇠로 꼽히는 비용절감과
고객만족경영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월마트의 역사를 언급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 바로 K마트와의
경쟁을 통한 성장전략이다.
월마트는 고객이 사간 물건을 2주일내에 K마트가 더 싸게 팔면 차액을
되돌려 준다.
K마트도 마찬가지다.
양사간의 경쟁이 어느정도인지를 짐작케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사실 경쟁초기의 월마트는 K마트와 경쟁할 정도의 덩치가 아니었다.
창립 5년이 지나도록 월마트의 상점은 19개였다.
그때 K마트는 이미 2백50개의 점포를 갖고 있었다.
월튼회장은 두가지 전략에 초점을 맞춰 K마트와 경쟁을 시작했다.
첫째 물류 첨단화를 위한 투자다.
월마트의 성장을 관리하고 비용구조를 낮추기 위해서는 컴퓨터가
필요하다는게 그의 확신이었다.
매장의 현금등록기에서 임원들이 사용하는 PC에 이르기까지 전사적인
컴퓨터망을 구축했다.
공급자까지 컴퓨터망으로 끌어들여 월마트의 상점과 공급자 양쪽을
컴퓨터로 연결했다.
상품에 바코드를 붙여 상품을 자동으로 인식하는 자동인식기능이나
컴퓨터화된 재고 목록시스템도 도입했다.
트럭과 배송센터에 대한 투자도 대폭 늘려 물품을 적기에 공급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월마트가 인공위성 시스템까지 동원한 세계 최고의 첨단 배송체계를 갖출수
있었던 것은 월튼 회장의 이런 선견지명 덕분이었다.
규모의 효율성과 경제성을 통한 시간과 비용절감.
이런 첨단무기가 있었기에 월마트는 가격파괴 전쟁에서 승리할수 있었다.
K마트의 대응은 다분히 고전적이었다.
K마트는 마케팅과 상품개발이란 재래무기로 싸움에 나섰다.
비용절감보다는 광고를 통한 홍보에 초점을 맞췄다.
이런 K마트의 광고전략은 브랜드 이미지 개선이라는 일시적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월마트의 첨단 배송체계에 추격당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다음으로 월튼 회장이 착수했던 일은 연관사업으로의 다각화였다.
잡화상을 운영하면서 할인판매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했듯, 월튼 회장은
할인판매를 하면서 도매업의 개념을 사업에 도입했다.
80년대초 월튼 회장은 경비를 줄여 월마트보다 싼 값으로 물건을 파는
"도매클럽"아이디어를 사업화했다.
창고형 할인점 샘스클럽이 그것이다.
주요 타깃은 소규모 자영업자들이나 대량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고객이었다.
88년에는 대형매장으로 인해 상품의 신선도가 떨어지고 진열상태가 나쁘다는
단점을 갖고 있었던 하이퍼마트를 개조, 할인매장과 하이퍼마트를 결합한
슈퍼센터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뒀다.
이런 다각화 전략에 힘입어 90년부터 월마트는 매출과 순익 양면에서
K마트와 1백년 역사를 지닌 시어즈를 앞질러 나가기 시작했다.
91년에는 멕시코시티에 처음으로 인터내셔널 스토어를 개점하면서 월마트는
국제적인 회사로 성장하게 된다.
현재 월마트는 멕시코를 비롯 캐나다 독일 아르헨티나 브라질 중국 등
7개국에 6백7개의 해외체인점을 갖고 있다.
월마트는 변신에 능하기로 유명하다.
대대적인 부실점포 정리가 대표적인 예다.
월마트는 경영이 부진한 점포를 폐쇄하거나 업태를 전환하고 취급상품의
구성을 바꾸는 등 경영전반에 대한 수술에 나서고 있다.
특히 잡화위주의 할인점에 1차 식품을 강화한 슈퍼센터를 향후 성장을
이끌어 나갈 주력업체로 선정, 육성하는 경영혁신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월튼 회장은 오랫동안 유통업계의 최강자로 군림했던 시어스가 무너진
이유를 "월마트나 K마트를 진정한 경쟁자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상을 넘보는 도전자는 항상 존재한다.
경쟁의 선두에 서기 위해서는 계속 변화하고, 계획을 실행해야 한다"
월튼 회장의 이런 긴장감이 바로 월마트의 파워를 유지시키는 비결이다.
< 노혜령 기자 hroh@ >
< 김도균 AT커니 컨설턴트 seoul-opinion@atkearney.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8일자 ).
세계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의 기업 사이즈다.
매출액은 우리나라 1년 예산의 2배에 해당한다.
GM, 포드, 엑손에 이어 미국 4위다.
종업원 수는 미국 우정공사(우체국)에 이어 2위 규모다.
매주월마트에 들러 쇼핑하는 인구만도 전세계 4천만명.
미국의 한 시골잡화상을 이런 거대 유통업체로 성장시킨 인물이 월마트
창업주 샘 월튼이다.
미국인들에게 고 월튼 회장은 항상 미소짓는 "샘 아저씨"다.
그러나 이런 푸근한 미소뒤에는 "경쟁이 없이는 오늘날의 월마트가
없었다"는 그의 냉철한 비즈니스 철학이 있었다.
45년 월튼 회장은 벤 프랭클린이라는 잡화점체인을 운영하는 지역 소매상과
계약을 맺고 아칸소주에 싸구려 상품을 파는 잡화상을 인수한다.
바로 월튼 회장이 소매업에 첫발을 내딛게 되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월튼 회장은 상점 운영에 대한 노하우를 터득한다.
가격을 낮추면 판매가 늘어나고 결국 더 많은 이윤을 남길수 있다는 할인
판매전략, 인구 1만명을 넘지 않는 도시에서도 할인점이 충분한 사업성을
갖고 있다는 소도시 중심의 진입전략.
이런 아이디어가 모두 이때 싹튼 것이다.
월튼 회장이 할인업 진출을 결심한것도 바로 이때다.
K마트, 울코, 타깃 등 할인점이 잇달아 문을 연 62년.
할인점 개설붐 속에서 월마트도 1호점을 열었다.
이때 내건 문구가"우리는 싸게 팝니다"와 "고객의 만족을 보증합니다"였다.
이들 철학은 아직도 월마트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싸구려 잡화 체인점들이 대거 창고형 할인점으로 전환하던 혁명적 변화의
시기에 월튼 회장은 이미 유통업의 핵심 성공열쇠로 꼽히는 비용절감과
고객만족경영의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월마트의 역사를 언급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 바로 K마트와의
경쟁을 통한 성장전략이다.
월마트는 고객이 사간 물건을 2주일내에 K마트가 더 싸게 팔면 차액을
되돌려 준다.
K마트도 마찬가지다.
양사간의 경쟁이 어느정도인지를 짐작케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사실 경쟁초기의 월마트는 K마트와 경쟁할 정도의 덩치가 아니었다.
창립 5년이 지나도록 월마트의 상점은 19개였다.
그때 K마트는 이미 2백50개의 점포를 갖고 있었다.
월튼회장은 두가지 전략에 초점을 맞춰 K마트와 경쟁을 시작했다.
첫째 물류 첨단화를 위한 투자다.
월마트의 성장을 관리하고 비용구조를 낮추기 위해서는 컴퓨터가
필요하다는게 그의 확신이었다.
매장의 현금등록기에서 임원들이 사용하는 PC에 이르기까지 전사적인
컴퓨터망을 구축했다.
공급자까지 컴퓨터망으로 끌어들여 월마트의 상점과 공급자 양쪽을
컴퓨터로 연결했다.
상품에 바코드를 붙여 상품을 자동으로 인식하는 자동인식기능이나
컴퓨터화된 재고 목록시스템도 도입했다.
트럭과 배송센터에 대한 투자도 대폭 늘려 물품을 적기에 공급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월마트가 인공위성 시스템까지 동원한 세계 최고의 첨단 배송체계를 갖출수
있었던 것은 월튼 회장의 이런 선견지명 덕분이었다.
규모의 효율성과 경제성을 통한 시간과 비용절감.
이런 첨단무기가 있었기에 월마트는 가격파괴 전쟁에서 승리할수 있었다.
K마트의 대응은 다분히 고전적이었다.
K마트는 마케팅과 상품개발이란 재래무기로 싸움에 나섰다.
비용절감보다는 광고를 통한 홍보에 초점을 맞췄다.
이런 K마트의 광고전략은 브랜드 이미지 개선이라는 일시적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월마트의 첨단 배송체계에 추격당하는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다음으로 월튼 회장이 착수했던 일은 연관사업으로의 다각화였다.
잡화상을 운영하면서 할인판매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했듯, 월튼 회장은
할인판매를 하면서 도매업의 개념을 사업에 도입했다.
80년대초 월튼 회장은 경비를 줄여 월마트보다 싼 값으로 물건을 파는
"도매클럽"아이디어를 사업화했다.
창고형 할인점 샘스클럽이 그것이다.
주요 타깃은 소규모 자영업자들이나 대량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고객이었다.
88년에는 대형매장으로 인해 상품의 신선도가 떨어지고 진열상태가 나쁘다는
단점을 갖고 있었던 하이퍼마트를 개조, 할인매장과 하이퍼마트를 결합한
슈퍼센터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뒀다.
이런 다각화 전략에 힘입어 90년부터 월마트는 매출과 순익 양면에서
K마트와 1백년 역사를 지닌 시어즈를 앞질러 나가기 시작했다.
91년에는 멕시코시티에 처음으로 인터내셔널 스토어를 개점하면서 월마트는
국제적인 회사로 성장하게 된다.
현재 월마트는 멕시코를 비롯 캐나다 독일 아르헨티나 브라질 중국 등
7개국에 6백7개의 해외체인점을 갖고 있다.
월마트는 변신에 능하기로 유명하다.
대대적인 부실점포 정리가 대표적인 예다.
월마트는 경영이 부진한 점포를 폐쇄하거나 업태를 전환하고 취급상품의
구성을 바꾸는 등 경영전반에 대한 수술에 나서고 있다.
특히 잡화위주의 할인점에 1차 식품을 강화한 슈퍼센터를 향후 성장을
이끌어 나갈 주력업체로 선정, 육성하는 경영혁신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월튼 회장은 오랫동안 유통업계의 최강자로 군림했던 시어스가 무너진
이유를 "월마트나 K마트를 진정한 경쟁자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상을 넘보는 도전자는 항상 존재한다.
경쟁의 선두에 서기 위해서는 계속 변화하고, 계획을 실행해야 한다"
월튼 회장의 이런 긴장감이 바로 월마트의 파워를 유지시키는 비결이다.
< 노혜령 기자 hroh@ >
< 김도균 AT커니 컨설턴트 seoul-opinion@atkearney.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