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영화는 어린이들만의 전유물인가.

미 영화사인 드림웍스가 애니매이션의 영토를 확장하는 새로운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어른도 즐기는 만화영화"를 만들자는 것이다.

만화란 표현양식의 하나일뿐 극영화와 똑같이 다양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게 그 출발점이다.

혁명의 선두엔 제프리 카젠버그(48)가 서있다.

84년부터 10년간 디즈니의 사장으로 일하며 "인어공주" "라이언킹" 등을
만들어 애니매이션의 중흥을 일궈냈던 사람이다.

디즈니의 매출을 2억2천5백만달러에서 45억달러로 끌어올린 신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4년전 스티븐 스필버그, 데이비드 게펜과 공동으로 드림웍스를 창립한 그가
이제 만화영화의 새 역사를 쓰려 한다.

첫작품은 올 크리스마스께 선보일 "이집트왕자"(Prince of Egypt).

모세가 유대인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했던 성경의 출애급기에서 소재를
따왔다.

"이집트왕자"는 두가지 면에서 기존 만화영화와는 다르다.

우선 동화적인 이야기가 주류를 이뤘던 스토리라인이 형제간의 애증과
갈등, 신앙의 영역으로 확대됐다.

표현방식도 진지해졌다.

주인공의 캐릭터는 예뻐야한다는 고정관념부터 깼다.

인종적인 특징을 살려낸 얼굴엔 인간의 희노애락이 모두 담긴다.

만화영화의 양념으로 등장하던 "말하는 동물"들도 사라졌다.

동물은 더 이상 인간세계에 간섭하지 못한다.

제작진이 2주일간 중근동지방을 여행하며 스케치한 소품들도 무척
사실적이다.

특히 1천1백92장면 대부분에 특수효과가 들어갔다.

전차경주, 피라미드의 건설, 홍해가 갈라지는 장면 등의 웅장함은 관객을
압도한다.

"이집트왕자"에 앞서 10월말 개봉예정인 "개미"(Ant Z)에선 카젠버그의
의도가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개미"는 "토이스토리"이후 처음 시도되는 삼차원(3D)애니매이션이다.

하지만 주제는 놀랍게도 "거대조직사회에서 소외된 한 구성원의 자기발견
선언"이다.

주인공 "Z"는 우디 알렌을 본떴다.

뉴요커의 상징인 알렌은 풍자와 독설에 능해 미 영화계에서도 지성파로
분류된다.

이러한 스타일은 "스피리트" "엘로라도" "애쉬" 등 드림웍스의 차기
작품에서도 계속된다.

목표는 명확하다.

"어른들의 환상"까지도 만화영화를 통해 키워나가자는 것이다.

프로듀서 샌디 래빈스는 "새로운 관객층"(New Audience)을 원한다고 말했다.

실험의 성공여부를 예단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진행상황은 고무적이다.

카젠버그가 애니매이션의 소재와 표현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킨 선구자로
기록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 LA= 이영훈 기자 bri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