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미국 등 선진 금융국들에서 채무 개도국들의 숨통을 틔여주는
희망적인 발언들이 나오고 있다.

과연 이 발언들이 현실화돼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끝날 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미셸 캉드쉬 총재는 16일 "외환 위기국의 채무상환을
일시 중단시켜 디폴트(국가부도)를 유예해주는 새로운 제도적 장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도상황에 몰린 국가에게 2-3개월의 시간을 주어 빚을 갚을 수 있도록
유도하자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미 시행한 바 있는 부도유예협약과 비슷한 조치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나온 것도 아니고 IMF 회원국들과의 협의를 거쳐야
하지만 채무국들로서는 상당히 고무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이에 앞서 14일에는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선진국들이 채무국들의 부채를
탕감해주자는 의견을 내놨다.

"르윈스키와의 섹스 스캔들로 탄핵위기에 처한 클린턴이 경제해법으로
수렁을 벗어나려 한다"는 비판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동안 세계 경제위기를
컨트롤할 중심세력이 없었던 상황이고 보면 클린턴의 이같은 발언은 개도
채무국들로서 힘이 되는 것이라고 평가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에앞서 9일 일본은 실제로 경기부양을 내걸고 전격적인 금리인하를
실시했다.

세계 금융계는 "미국도 여러가지 상황을 미루어 볼때 조만간 금리를
인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상무부가 발표한 <>무역적자 증가 <>상품교역 위축등의 경제지표
발표치들은 디플레 조짐을 가시화하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하는 시간문제라는 견해도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외에도 15일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채무 개도국들은 IMF의
처방에만 의존하지 말고 채무지불유예 등 좀 더 적극적이고 유연한 위기
탈출법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한 것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지불유예를 선언해서라도 <>채무상환 조정에 필요한 시간을 벌고 <>단순한
"유동성 위기"문제를 지불불능 상태로 까지 확대시키지 말자는 것이다.

이러한 저간의 움직임들은 확실히 채무국들에게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움직임이 순조롭게 현실화될 지는 아직 미지수다.

단적인 예로 클린턴 대통령이 선진국 공동의 금리인하를 제의했을때
영국은 상황논리를 펴며 이를 따를 수 없음을 밝혔고 미국내에서도 그린스펀
의장이 "미국이 먼저 금리를 인하할 생각은 없다"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캉드쉬 총재가 제안한 "국가부도 유예"제안도 회원국들의 반발을 이겨내고
빛을 볼지 의문이다.

IMF가 일방적으로 부도유예를 강제한다고 해서 돈을 떼일 처지에 있는
회원국 민간 금융기관들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거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설사 합의를 해주더라도 유예절차를 구체화하는 문제는 더욱 어려울 수
있다.

채권행사 정지명령을 내릴 수 있는 일정한 총족요건 역시 문제며 정지
명령의 법률적 효력은 어느 수준에서 규정될 것인지 등등 아직 풀어야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IMF의 위상을 둘러싼 선진국들간 갈등도 배제할수 없다.

미의회는 IMF의 개혁을 요구하는 한편 IMF에 대한 철저한 감독권을 요구하고
있다.

감독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돈을 대지 않겠다는 것이어서 다른 나라와의
갈등이 필수적이다.

IMF가 채무상환 유예를 명령하는 권한을 가지게 될 경우 이는 지난 45년
설립된 이 조직의 성격이 종전의 단순한 유동성 조절기구에서 명실상부한
권력기구화하는 변화를 불러오게 된다.

이런 변화를 다른 나라들이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넘어야 할 장애물들이 많다.

< 박수진 기자 parksj@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