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미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이 이번 주초 최대의 고비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경제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선진국들의 공동노력 역시 클린턴과 운명을
함께할 전망이어서 전도가 불투명하다.

미의회 법사위는 논란 끝에 오는 21일 밤 10시(한국시각) 빌 클린턴
대통령의 연방대배심증언 비디오를 공개하기로 했다.

이 비디오에는 흥분한 클린턴 대통령의 신경질적인 답변, 검사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모해 쩔쩔매는 모습,검사들과의 과격한 언쟁 등 클린턴에게
불리한 내용들이 들어 있다.

모두 클린턴의 위증혐의를 높일 수 있는 대목들이다.

따라서 비디오가 공개되면 여론은 급격하게 반클린턴쪽으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동안 클린턴은 "여론"에 힘입어 그나마 의회의 공격을 막아내고 지도자
로서의 위치를 지켜올수 있었다.

지난주 "세계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긴급대책"을 내놓은 것도 여론이 뒤를
받쳐준 덕분이었다.

그러나 미 정치분석가들은 이 비디오가 공개되면 클린턴의 운명이 회생
보다는 침몰쪽으로 결정날 가능성이 좀 더 크다고 지적한다.

더우기 현실은 이미 클린턴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비디오 공개가 결정된 후 처음 나온 여론조사 결과가 그 증거다.

뉴스위크지가 지난 19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클린턴에 대한
탄핵 찬성비율은 41%를 기록해 1주일전(35%)보다 6%포인트나 높아졌다.

클린턴이 사임해야 한다는 비율도 46%를 보여 역시 1주일전(39%)보다
7%포인트나 올라갔다.

결국 의회측의 집요한 공세가 나름대로 효과를 보고있다는 얘기다.

만일 클린턴이 21일의 비디오 공개 이후 여론의 악화라는 역풍을 맞게
된다면 사태는 상당히 심각해진다.

그동안은 "그래도 여론은 내편"이라며 버텨 왔지만 여론마저 등을 돌린다면
그의 정치적 입지는 말그대로 풍전등화가 되고 만다.

특히 지난 14일 긴급제안한 이후 국제적인 호응을 받고 있는 "세계경제를
풀기 위한 6대 해법" 역시 표류할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또 줄줄이 날자가 잡혀 있는 각종 국제회의들이 알맹이없는 회담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당장 22일로 예정돼 있는 미.일정상회담은 물론이고 내달초로 예정된 선진
7개국(G7) 재무장관회담과 국제통화기금(IMF) 총회 등에서 지도력 부재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클린턴이 제안한 선진국과 개도국의 합동회의인 G22(G7+주요 15개
선진개도국) 회담은 아예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

만일 비디오 방영후에도 여론의 지지도가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해 준다면
클린턴 대통령은 오히려 보다 적극적으로 세계경제 위기를 풀기 위한 외교
활동을 강화할 것이다.

외교무대에서의 지도력 행사를 통해 국내정치를 풀어가는 수순을 보여줄
것이라는 얘기다.

< 이정훈 기자 leeh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