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확정,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의 편성
방향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아야 할 것같다. 자칫 잘못하면 산업기반이
붕괴될 정도의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데다 그로인한 실업증가가
지속되고 있는 경제현실을 감안한다면 내년도 예산편성의 우선순위를 경제
활력의 회복에 두고 재정의 경기대응 능력을 제고시킨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로 보는 것이다.

내년 예산안은 재정수지를 국내총생산(GDP)대비 5%에 달하는 큰 폭의
적자로 편성했고, 세출내용에 있어서 경제 구조조정 지원과 실업 및
저소득층 보호강화, 사회간접시설(SOC)투자의 확대 등에 중점을 두었다는
점이 예년과 다른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물론 창군이래 처음으로 방위비를 삭감한 것과 농어촌 및 교육투자
사업비를 축소시킨 것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다고 생각되지만 이것은
한정된 재원의효율적인 활용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우리는 정부 예산안의 큰 그림에 대해서는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과연 최선의 내용으로 짜여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몇가지 지적하고픈 점도
없지는 않다.

우선 정부의 고통분담 의지가 미흡하다는 느낌을 갖는다. 예컨대 정부는
내년도 공무원 인건비를 총액기준 4.5% 삭감키로 하고 이를 예산에 반영했다.
삭감수단은 퇴직금 등에 영향이 없는 체력단련비 폐지 등을 동원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높다고 볼 수 없는 공무원 봉급을 감안한다면 그것도 쉽지않은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민간기업 근로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비하면 훨씬
못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민간기업 근로자들의 임금삭감 규모는 최고
50%에 이르는 곳도 있음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뿐만아니라 조직축소 등 공공부문의 구조조정 노력도 말만 무성했지
가시적인 성과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저조하다. 이래가지고는 고통받는
서민과 납세자들을 설득시키기 어렵다.

재정운영과 관련해서 걱정되는 것은 적자의 만성화 가능성이다. 선진국
들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재정적자가 한번 발생하면 쉽사리 개선하기
힘들다. 더구나 내년예산은 경제에 대해 너무 낙관적인 판단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없지않아 더욱 걱정이다. 때문에 경제여건
변화에 신축대응할 수 있는 대안을 미리미리 생각해둘 필요가 있다.

앞으로 국회심의 과정에서 이같은 문제점들이 심도있게 분석돼 보완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매년 되풀이되는 주문이기는 하지만
얼마나 알뜰하게 집행하느냐이다. 이번에 정부가 취한 사용기관의 예산집행
자율성을 제고하는 등의 제도개선은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가능하다면
편성된 예산을 그 해에 집행해야 하는 단년도주의 예산제도의 보완도 함께
검토해 보는게 좋을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