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에 유행했던 분청은 청자에 기원을 두고 있으면서도 청자와는
전혀 다른 사기이다.

회색흙에 백토로 분장을 하고 회청색 유약을 발랐다고 해서 분청이다.

화려함을 좋아하는 서양인들의 미적감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정서다.

일본이 이를 흉내내 미시마야끼를 만들어 냈으나 우리의 분청과는 비견될
수가 없다.

분청사기의 대표적 문양은 어문이다.

물론 분청에는 어문외에도 연꽃 모란꽃 용 매화 등 다양한 문양이 있다.

그러나 거침없고 과감한 필치로 그려낸 어문은 분청의 색깔 기형과 어울려
독특한 맛을 낸다.

가식없고 소박하면서도 매우 추상적이다.

압축과 단순화, 과감한 생략으로 유명한 피카소도 이 문양을 흉내낸 듯하다.

분청사기조화어문편병(국보 178호)은 어문 분청중 두 개밖에 없는 국보중의
하나다.

입구가 좁고 몸체가 둥근 원반형이어서 양감도 좋다.

앞면에는 물고기 세마리가, 뒷면에는 위로 향한 물고기 두마리가 새겨져
있다.

양 옆면에는 위와 중간부분에 변형4엽모란문이 선각돼 있다.

분청은 조선시대 중기에 오면 백자에 밀려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분청은 조선시대 전기와 중.후기의 문화정신이 다르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 오춘호 기자 ohch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