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선비정신과 경제 .. 최근덕 <성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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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에 이런 얘기가 실려 있다.
공자께서 위나라를 방문했는데 염유라는 제자가 수레를 몰았다.
수도에 들어서자 공자가 좌우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백성이 번성하구나"
거리를 나다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공자의 말씀에 염유가 물었다.
"백성이 이토록 번성하다면 또 무엇을 보태야 합니까?"
"경제를 성장시켜야지"
공자는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많은 백성을 먹여 살리자면 나라를 부하게 해야 되는 것이다.
"경제 성장을 시키고 나면 또 무엇을 보태야 합니까?"
염유의 물음에 공자가 대답했다.
"가르쳐야지"
이로 보면 공자는 우선 경제 성장을 시켜 놓고 그에 따라 사람들을 교육
시켜야 된다고 주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다.
가르침이 먼저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만 위나라의 경우에는 이미 백성이 번성한데다 경제 성장에의 발동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늦기 전에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세상 일에는 뿌리(근본)와 가지(말단)가 있고 먼저 해야 할 일과 뒤에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고 어느 것이 먼저이고 어느 것이 뒤로 돌려야 할
일인가를 분간할 줄 알아야 된다고 역설한 것도 공자와 그를 잇는 학파의
주장이었다.
그들의 꿈은 이 세상에 도덕이 바탕이 되는 이상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먼저 윤리 도덕을 바로 세워 놓으면 사람(백성)이 모여들게 되고 사람들이
모여 들게 되면 경제 성장은 저절로 된다고 생각했다.
도덕의 바탕위에 경제가 성장하게 되면 그건 깊고 기름진 땅속에 뿌리 박은
초목같아서 성장도 빠를뿐 아니라 성장하면서도 절대로 바람을 타지 않는다고
했다.
어릴적에 가정에서는 부모 섬기기(효) 형제 사랑하기(제)부터 가르친다.
그런 행실이 몸에 배게 되면 비로소 학교에 입학시킨다.
학교에서도 물뿌려 청소하기(쇄소) 부르고 대답하기(응대)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서기(진퇴) 등 행실부터 가르친다.
그러고나서 다음 단계로 어버이 사랑하기(애친) 어른 공경하기(경장) 스승
높이기(융사) 친구 사귀기(친우) 등 갖가지 행실을 가르치고 그것이 몸에
배고 나서야 글자며 셈하기 등을 가르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교육의 결과로 생겨나는 인간형은 다음과 같은 예의 선비로 굳어지게
된다.
예화 하나를 들어보자.
조선 성종때 윤석보라는 선비가 있었다.
집안이 몹시 가난했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에 급제했고 벼슬이 차츰
올라갔다.
그가 풍기 군수로 있을 때였다.
고향집에서 논 몇마지기를 사서 보탰다는 소식이 전해 왔다.
고향집을 지키고 있는 아내가 가난에 쫓기다 보니 여러 궁리를 하게 되었고
생각끝에 집안에 전해 오는 비단옷이며 값나가는 물건들을 팔아서 돈을 장만
한 뒤에 논 몇마지기를 사들였다는 것이다.
이를 알게 된 윤석보는 아내를 꾸짖는 편지를 보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벼슬하는 자가 재산을 늘려 그 임금을 욕되게 하지
말라 했소. 내가 벼슬에 올라 고을 군수까지 되었는데 집에서 땅을 넓혔다고
하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나는 나라에서 받는 녹이 있거늘 어찌 농부의
몫인 논을 가지게 된단 말이오. 이 편지 받는 대로 새로 산 논을 원주인에게
돌려주시오"
남편의 준열한 꾸짖음을 옳게 여긴 그의 아내는 내다 판 비단옷이며 물건
들을 도로 찾고 논은 농민에게 돌려 줬다.
경제 성장은 왜 하는가.
잘 살기 위해서다.
잘 산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가.
사람답게 산다는 뜻이다.
사람답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모두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경제 난국은 어째 들이닥쳤는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온 것이 아니다.
설령 이 난국을 극복한다고 하더라도 경제논리로만 풀어선 안된다.
뿌리를 생각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6일자 ).
공자께서 위나라를 방문했는데 염유라는 제자가 수레를 몰았다.
수도에 들어서자 공자가 좌우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백성이 번성하구나"
거리를 나다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공자의 말씀에 염유가 물었다.
"백성이 이토록 번성하다면 또 무엇을 보태야 합니까?"
"경제를 성장시켜야지"
공자는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많은 백성을 먹여 살리자면 나라를 부하게 해야 되는 것이다.
"경제 성장을 시키고 나면 또 무엇을 보태야 합니까?"
염유의 물음에 공자가 대답했다.
"가르쳐야지"
이로 보면 공자는 우선 경제 성장을 시켜 놓고 그에 따라 사람들을 교육
시켜야 된다고 주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다.
가르침이 먼저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다만 위나라의 경우에는 이미 백성이 번성한데다 경제 성장에의 발동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늦기 전에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세상 일에는 뿌리(근본)와 가지(말단)가 있고 먼저 해야 할 일과 뒤에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고 어느 것이 먼저이고 어느 것이 뒤로 돌려야 할
일인가를 분간할 줄 알아야 된다고 역설한 것도 공자와 그를 잇는 학파의
주장이었다.
그들의 꿈은 이 세상에 도덕이 바탕이 되는 이상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먼저 윤리 도덕을 바로 세워 놓으면 사람(백성)이 모여들게 되고 사람들이
모여 들게 되면 경제 성장은 저절로 된다고 생각했다.
도덕의 바탕위에 경제가 성장하게 되면 그건 깊고 기름진 땅속에 뿌리 박은
초목같아서 성장도 빠를뿐 아니라 성장하면서도 절대로 바람을 타지 않는다고
했다.
어릴적에 가정에서는 부모 섬기기(효) 형제 사랑하기(제)부터 가르친다.
그런 행실이 몸에 배게 되면 비로소 학교에 입학시킨다.
학교에서도 물뿌려 청소하기(쇄소) 부르고 대답하기(응대) 앞으로 나아가고
뒤로 물러서기(진퇴) 등 행실부터 가르친다.
그러고나서 다음 단계로 어버이 사랑하기(애친) 어른 공경하기(경장) 스승
높이기(융사) 친구 사귀기(친우) 등 갖가지 행실을 가르치고 그것이 몸에
배고 나서야 글자며 셈하기 등을 가르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교육의 결과로 생겨나는 인간형은 다음과 같은 예의 선비로 굳어지게
된다.
예화 하나를 들어보자.
조선 성종때 윤석보라는 선비가 있었다.
집안이 몹시 가난했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에 급제했고 벼슬이 차츰
올라갔다.
그가 풍기 군수로 있을 때였다.
고향집에서 논 몇마지기를 사서 보탰다는 소식이 전해 왔다.
고향집을 지키고 있는 아내가 가난에 쫓기다 보니 여러 궁리를 하게 되었고
생각끝에 집안에 전해 오는 비단옷이며 값나가는 물건들을 팔아서 돈을 장만
한 뒤에 논 몇마지기를 사들였다는 것이다.
이를 알게 된 윤석보는 아내를 꾸짖는 편지를 보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벼슬하는 자가 재산을 늘려 그 임금을 욕되게 하지
말라 했소. 내가 벼슬에 올라 고을 군수까지 되었는데 집에서 땅을 넓혔다고
하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나는 나라에서 받는 녹이 있거늘 어찌 농부의
몫인 논을 가지게 된단 말이오. 이 편지 받는 대로 새로 산 논을 원주인에게
돌려주시오"
남편의 준열한 꾸짖음을 옳게 여긴 그의 아내는 내다 판 비단옷이며 물건
들을 도로 찾고 논은 농민에게 돌려 줬다.
경제 성장은 왜 하는가.
잘 살기 위해서다.
잘 산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가.
사람답게 산다는 뜻이다.
사람답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 모두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경제 난국은 어째 들이닥쳤는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온 것이 아니다.
설령 이 난국을 극복한다고 하더라도 경제논리로만 풀어선 안된다.
뿌리를 생각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