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롯데백화점 본점 2층.

수많은 쇼핑객들로 붐비는 이 곳은 여성복 업체들엔 전쟁터나 다름없다.

국내 대표적인 여성복 브랜드가 한자리에 모여있기 때문이다.

저마다 화려한 디스플레이를 뽐내는 매장들 틈속에서 매출액 1위자리를
빼앗기지 않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데코"다.

97년 10월 한달동안 롯데 본점 매장 한군데에서 올린 6억원 매출은
업계에서 "신화"로 남아있다.

매장 직원들은 한달 내내 포장하기 바쁠 정도였다.

IMF 충격으로 판매량이 급감한 요즘에도 데코 매장은 매달 3억원 가까운
매출을 기록하며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데코, 텔레그라프, 아나카프리, 지지베 등으로 잘 알려진 여성복 전문업체
(주)데코의 김영순(37)기획이사.

그는 "데코신화"의 주인공이다.

"백화점 바이어가 데코는 이제 국민복이 다 됐다며 농담하더군요.

입기 편한 옷을 추구해온 저희들의 노력이 소비자들로부터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해졌어요"

기획이사로 승진하기 전까지 그는 7년동안 데코 디자인실장을 맡으며
브랜드를 실질적으로 이끌어왔다.

국민대에서 의상학을 전공하고 디자이너로 데코에 입사한 것이 지난 84년.

이직이 잦은 디자이너 세계에서 그는 한 우물만 판 드문 케이스다.

데코가 여성들에게 가까이 다가간 것은 86년 무렵.

국내 여성복 시장에 일대 변혁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캐주얼에 정장의 느낌을 가미한 이른바 "캐릭터 캐주얼"이 유행하면서
여성복 시장이 빠르게 커가던 때였다.

데코는 이 변화의 조류를 잘 탔다.

대학생과 직장 여성들 입맛에 딱 맞는 옷들을 연이어 선보이며 인기를
이어갔다.

"건강한 옷을 만들자는 것이 저희들의 모토였어요.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죠.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정직하게 승부했어요"

데코를 완전히 궤도에 올려놓은 96년 회사는 그에게 기획이사직을 맡겼다.

시야를 더 넓혀야 했다.

이젠 해외 바이어, 협력업체 사장들과의 잦은 상담은 물론이고 세계
패션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틈나는대로 해외 출장도 다녀야 한다.

후배 디자이너들을 다독거리는 것도 빼놓을수 없는 일이다.

한마디로 디자이너들의 큰 언니다.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많은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디자이너에게 가장 큰 보람이다.

고민끝에 내놓은 옷이 날개돋힌듯 팔릴때면 준비과정에서의 모든 고생은
한순간에 잊혀진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 가슴 아픔은 이루 말할수 없다.

그는 월요일 아침이면 평소보다 한시간 일찍 출근한다.

매일 찾는 수영장도 마다한다.

책상에 앉자마자 컴퓨터부터 켠다.

주말 판매상황을 체크하기 위해서다.

전국 매장별, 스타일별 판매 실적을 살펴보는 그의 얼굴은 매출 추이를
나타내는 그래프에 따라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한다.

"디자이너에게 매출액은 분명히 큰 부담이에요. 매출 부진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거든요. 한두사람의 잘못은 아니지만 가장 괴로워하는 사람은
결국 디자이너예요. 자신의 작품이 인정받지 못했다는 뜻이니까요"

요즘엔 전산 시스템이 잘 돼있어 하루하루 승부가 난다.

그래서 디자이너는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다.

그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땐 곧장 미용실로 향하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짧은 머리로 문을 나선다.

머리 속까지 제대로 정리되는 느낌이 들어서다.

훌쩍 바닷가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디자이너에게 재충전의 시간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는 앞으로 일하는 틈틈이 대학 강단에서 후배들을 양성하고픈 꿈을 갖고
있다.

그래서 대학원에서 공부를 더 할 생각이다.

탄탄한 이론을 바탕으로 자신이 겪은 다양한 실무경험을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전해주고 싶어한다.

지금 그의 머리 속에는 내년 봄.여름 신제품에 대한 구상이 가득 들어있다.

그에게서 미리 듣는 내년 경향.

"비대칭, 파격 등으로 올해 큰 인기를 모은 아방가르드 풍이 내년에는
더욱 대중화될 겁니다.

색상은 흰색 위주에 푸른색으로 포인트를 주는 것이 유행할거예요"

< 박해영 기자 bono@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