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체제 이후 제약업계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금융경색으로 인한 흑자도산과
함께 외자기업에 의한 인수합병이었다.

원화가치하락과 주식시장침체로 국내주가가 폭락했기 때문에 사실
외국회사들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인수합병을 할 수 있다.

외국인 주식지분 한도가 55%로 확대되면서 많아야 30%에 불과한 국내
제약업체 대주주들의 지분을 얼마든지 압도할 수 있다.

이런 틈을 이용해 주가조작을 통한 차액챙기기 차원에서 인수합병 루머를
주식시장에 퍼뜨린 부실 기업도 있었다.

아직까지 국내제약업계에서는 회사대 회사로 외국자본이 국내제약사를
인수 합병한 경우는 아직 없다.

다만 출자지분을 확대하거나 생산라인 일부를 인수한 사례만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진 것이다.

다국적 제약기업이 어떤 전략으로 인수합병에 나설 것인가.

초미의 관심사다.

금년초만 해도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주식소유지분이 낮고 경영실적이
우량한 중견업체가 우호적으로 인수합병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다 하반기들어 환율과 경영환경이 안정되면서 인수합병은 쑥 들어간
얘기가 됐다.

하지만 지금이 인수합병의 호기로 판단, 상반기의 탐색전을 마치고
하반기에는 본격적인 인수합병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인수합병은 지극히 어려운 문제다.

영국 그락소웰컴은 지난 5월 화의에 들어간 영진약품을 인수하려다 채권삭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지난 23일 끝내 인수포기를 선언했다.

1천8백억원대에 달하는 부채규모도 문제였지만 인수협상 막바지에서 회계상
기록되지 않은 부채가 속속 드러난게 화근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국적 제약회사는 국내사정을 크게 두가지 다른 시각으로 보고 있다.

우선 신중론.

최근 훽스트마리온룻셀이 한독약품에 대한 지분을 33.4%에서 50.0%로 늘린
것처럼 지분확대로 경영권장악만을 노리는게 유익하다는 판단이다.

외자기업을 배척하는 풍토에서 외자기업의 독자적 발전에는 무리가 따르므로
한국인을 경영인으로 삼아 한국파트너와의 협력체계를 공고히 한뒤 적절한
과실을 따가는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신중론으로는 기껏해야 지분확대나 생산시설 인수만이
가능할 뿐이다.

그 반대는 공격적 인수합병론.

어차피 다국적 기업의 최종목표가 한국내에서 독자경영인 만큼 IMF상황을
활용해 인수합병을 앞당겨야 한다는 것.

가장 중요한 핵심인 영업망을 비롯해 인력과 제품을 단기간에 확보하려면
회사를 인수해 시간 자금을 절약하고 경험을 사들이는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진출한지 오래되는 기업보다는 비교적 최근에 진출한 다국적 업체들이 이런
전략을 펼 가능성이 있다.

현재 인수합병을 추진중인 사례로는 영국 그락소웰컴을 꼽을 수 있다.

이 회사는 지난 5월 화의에 들어간 영진약품의 인수를 타진중이다.

그락소웰컴은 현금 일시상환조건으로 1천8백억원에 달하는 영진의 부채를
갚되 신용대출은 50%,담보대출은 25%씩 채무를 줄여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종 협상결과는 지켜봐야되겠지만 결국은 계약이 이뤄져 국내 최초의
인수합병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는게 관계자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