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싫어하기로 유명한 독일인들도 결국 변화를 선택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니더작센주 총리가 이끄는 사민당(SPD)이 16년간 집권해온 헬무트 콜
총리의 기민당(CDU)에 압승을 거둠으로써 정권교체와 함께 세대교체를 이뤄낸
지난 27일의 독일총선 결과는 21세기의 국가면모를 새롭게 해야 한다는 독일
인들의 다짐을 읽게해준다.

독일의 유권자들은 콜 총리가 비록 독일통일 등 많은 업적을 남기긴 했지만
높은 실업률과 세계적 경제위기, 유럽통합 등 산적한 국가적 난제를 풀어나가
기 위해서는 정권교체를 통한 새로운 활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전후 세대인 슈뢰더의 등장은 21세기를 앞두고 세계 냉전시대 지도자들의
퇴장과 신세대 정치지도자들의 부상을 완결짓는 의미를 갖는다. 슈뢰더는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 프랑스의 리오넬 조스팽
총리 등과 함께 탈냉전시대를 이끌 "젊은 지도자 그룹"에 합류하게 된 셈이다

슈뢰더는 개혁적 이미지를 가졌으면서도 불안감을 유발하지 않는 온건
중도노선을 내세워 정통 사회민주주의 노선에 충실했던 사민당의 면모를
안정감있는 중도좌파 정당으로 변모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당선
일성에서 실업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분열과 갈등의 봉합을 강조한 것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그의 앞길에는 만만치않은 경제 정치적 문제들이 가로놓여
있다.

당장 의회내 안정선 확보를 위해 공약대로 녹색당과 연정을 구성해야할
입장이지만 녹색당이 주장하고 있는 일부 급진 강경정책과 국민들의 거부
반응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그의 정치력에 대한 첫 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

최대의 현안인 실업문제에 대해서도 일자리 창출보다는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눠갖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어 실업문제의 근본적인 해결과는
거리가 먼 느낌이다. 또 좌파정당의 단골메뉴인 복지부문의 강화와 세금경감
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느냐도 관심거리다.

독일 사민당 정권의 탄생을 유럽정치 차원으로 확대해 볼 때 좌파 집권의
물결이 독일까지 밀려들어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정치의 주도국가들이
모두 좌파정권으로 21세기를 맞게됐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변화라고 하겠다.
이같은 좌파 집권의 배경에는 하나같이 고실업 등 경제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은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통적으로 독일의 각 정당들은 대외정책에서만큼은 초당적 컨센서스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정권교체가 한.독관계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슈뢰더 차기총리가 정책의 양대축으로 삼겠다고 밝힌
"경제적 역동성과 사회정의"는 김대중 대통령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발전"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때 슈뢰더정권의 탄생을 계기로 한.독관계가
더욱 확대되고 깊어지길 기대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