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하루였다.

금융사상 초유의 은행총파업을 하루 앞둔 28일 파업지도부인 전국금융노동
조합연맹도, 정부도 마음졸이긴 마찬가지였다.

만일 9개 은행의 총파업이 현실로 옮겨지면 금융시스템이 전면 중단되는건
명약관화한 일.금융노련이나 정부도 이같은 사실을 명백히 인식한 상태였다.

그러나 인력감축을 둘러싼 노사갈등이 봉합되는건 멀고도 머나먼 길.

이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으로부터 명백한 얘기를 듣지 않는한 총파업을
강행하겠다"는 노조의 입장과 "개별 은행의 인력조정문제는 해당은행
노사간의 문제"라는 금감위의 입장이 팽팽히 맞섰다.

말로만 얘기되던 은행총파업이 현재진행형으로 다가온 것은 지난 27일 저녁.

금융노련이 파업상황실을 서울 명동성당으로 옮기면서부터다.

지난 22일부터 단식농성중이던 추원서 금융노련 위원장등 파업지도부가
명동성당에 둥지를 틀면서 은행총파업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후 명동성당에선 금융노련과 은행 정부 등 3자간에 물밑 물위대화가
시도때도 없이 오고갔다.

그리고 날이 밝은 28일 오전.

그러나 노사정 3자는 전혀 물러설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명분을 놓칠수 없다"는 의지가 역력했다.

지난 26일 있었던 이헌재 금감위원장과 박인상 한국노총위원장간의 담판이
일시적 약효가 있었던건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에 대한 금융노련의 불신이 극에 달한 터라 그 약효는 오래
가지 못했다.

"우리가 한두번 속아왔냐.

금감위가 이행각서(MOU)를 돌려주지 않는한 어떤 것도 인정할수 없다"

"그래도 정부가 완전히 굴복한것 아니냐.

시민이나 고객들의 감정도 있는 만큼 이쯤해서 실리를 취해야 한다"

27일밤부터 28일 날이 밝을 때까지 계속된 파업지도부의 회의에서는 이런
논쟁이 팽팽히 오갔다.

그러나 역시 싸움은 힘의 논리다.

27일밤 파업지도부가 설치된 뒤부터 답지하는 은행원들의 격려에
파업지도부에선 자연스럽게 강경논리가 우세할수 밖에 없었다.

"일단 총파업 실무를 진행하되 대통령 기자회견과 이헌재 위원장의 간담회를
지켜보자"며 총파업결행에 대한 최종 결론을 유보했던 금융노련.

그들앞에 다가선건 정부의 유화적 제스처였다.

이헌재 위원장은 대통령 기자회견장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총파업을)
해결하겠다"고 공표했다.

이어 28일오후 2시 김영재 금감위 대변인을 통해 "9개 은행의 인력조정
문제는 해당은행 경영진과 노조간의 자율적인 협의로 이행돼야 한다"는
사실상의 "항복선언"을 하고 말았다.

이 위원장은 이어 은행장대표인 류시열 제일은행장을 대동, 이날 오후 3시
박인상 한국노총위원장과 추원서 금융노련위원장을 명동성당에서 만나 담판을
벌였으나 봉변을 당하고 말았다.

파업지도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명동성당에 모여있던 5개 퇴출은행
직원들의 거센 항의에 부닥쳤던 것.

결국 이 위원장과 추 위원장 등은 이날 오후 3시30분부터 은행회관으로
자리를 옮겨 멀고도 긴 마라톤 협상에 돌입했다.

같은 시간 9개 은행 영업점에선 "내돈 내놓으라"는 고객들의 아우성이
빗발치고 있었다.

< 하영춘 기자 hayou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