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전장에서 이기기 위해선 리더의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다.

리더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다면 상대방을 무찌를 수 있다.

국경없는 경제전쟁을 치르는 기업입장에서도 리더십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CEO(최고경영자)가 비전을 제시하며 리더십을 발휘하면 기업은 그만큼
생존할 가능성이 크다.

위기일수록 CEO의 지도력은 더욱 필요한 것이다.

세계적인 제약회사인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의 찰스 하임볼드 주니어가
바로 리더십으로 CEO의 역량을 발휘한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그가 지난 94년 CEO에 취임했을 때 이 회사의 수익은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전년과 비교해 매출은 제자리걸음이었다.

하임볼드 회장은 이같은 상황을 가져온 이유중 하나가 조직내 지도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도력이 없으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구심점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여겼다.

리더없는 조직에는 패배주의가 자리잡을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도 작용했다.

그래서 핵심비즈니스 부문의 경영진을 바꾸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같은 방침에도 사내 반발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의 리더쉽 스타일은 한마디로 비즈니스 인텔리전스와 외교를 혼합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억지로 강요하는 권위주의적인 리더쉽이 아니었다.

그는 회사생활 초기에 비핵심사업을 매각하는 등 전략기획일을 맡을
때부터 리더쉽을 어느정도 인정받았다.

그만큼 하임볼드 회장은 강력한 리더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임볼드 회장은 다른 CEO처럼 막무가내로 경영진을 쫓아내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때다"는 점을 강조해 자발적인 용퇴를
이끌어냈다.

그는 외부에서 임원을 영입하는 등 회사내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물론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임용 기준은 과연 그 사람이 얼마나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느냐였다.

하임볼드의 리더쉽은 학교교육과 법률전공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6형제중 장남인 하임볼드는 미국 뉴저지주 뉴워크에서 태어나 오션
카운티라는 교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비즈니스맨이었고 어머니는 간호사였다.

썩 부유한 가정은 아니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가족 모두가 일을 해야했다.

10대가 되면서 그는 건설현장 혹은 도박장에서 일했다.

해군 예비역장교훈련(ROTC) 장학금을 받아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그는
졸업 후 해군 구축함에서 엔지니어로 복무했다.

바로 그곳에서 그는 리더쉽의 기초를 익혔다.

어떻게 하면 조직원들이 가장 효율적으로 일하고 일의 성과를 높일
수 있는지 고민했다.

바로 리더쉽과 일의 성과간 관련성을 스스로 터득하게 됐다.

"리더쉽 개발"은 하임볼드가 가장 역점을 두는 일이다.

매년 여름 하임볼드는 20여명의 중간관리자를 커네티컷의 회의실에
초대해 함께 시간을 갖고 장래 회사를 이끌 인재를 발굴하기도 한다.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는 지역적으로나 사업영역에 있어 다각화된
기업이기 때문에 경영진이 갖는 자율권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따라서 각각의 사업부들이 리더의 스타일에 따라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인다.

업무와 사업의 특성에 따라 서로 다른 리더가 필요하다는 점을 하임볼드는
항상 강조했다.

리더쉽이 경영에 미치는 중요성을 대부분의 사업부문장들은 잘 알고
있었다.

영양식품과 의료기기부문을 맡고 있는 피터 돌란은 자신의 리더쉽 철학을
이렇게 말한다.

"경영자는 강한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설혹 크게 호응을 받지
못하는 의사결정도 과감히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결코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의 회장이자 CEO인 하임볼드는 사내에서 꾸준히
경력을 쌓으면서 성장했다.

그는 지난 63년 6월 법무관련 부서에서 입사해 몇년 후 기업 개발부의
이사로 임명됐다.

73년에는 기획.개발 부문 담당 부사장이 됐고 81년에는 수석 부사장의
자리에 올랐다.

그 후에도 사내 요직을 거쳐 92년 사장이 됐으며 마침내 94년 회장 겸
CEO에 취임했다.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하임볼드는 뉴욕의 유명한 법무 법인에서 일했다.

그는 교육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 펜실베니아 대학 법학 대학원 위원회
회장을 맡는 등 여러 교육 단체에서 활동했다.

그는 또 마약사용금지 활동을 벌이는 피닉스 하우스의 이사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의약품 제조업계 및 생화학업계를 대표하는 단체장을 맡고
있다.

그만큼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를 두고 주위에서 정렬적이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임볼드는 최고 품질의 건강 관련 제품을 통해 인간의 수명을 늘리고
복지를 증진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다양한 제품을 제공하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는 성장 생산성 역동적인 운영문화라는 세가지 축을 중심으로 기업을
운영했다.

그는 특히 왕성한 정력이 있어야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정력은 정신 및 신체건강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믿었다.

리더쉽만 있으면 실천가능성이 큰 경영전략을 마련하기가 그만큼 쉽다는
것이다.

경영 컨설턴트들은 책임의식이 강한 CEO들이 강한 리더쉽을 발휘해
경영성과를 높인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한다.

< 최영일 AT커니 컨설턴트 seoul-opinion@atkearney.com
이익원 기자 ik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