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라 가즈오 주한 일본대사는 지난달 16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월례조찬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한.일 양국간 "자유무역지대설치"나 "경제통합가능성"을
연구해보자고 제의했다.

김대중 대통령 방일을 앞두고 나온 일본대사의 이번 제안은 한.일 경협에
대한 일본의 중대한 입장변화라고 볼 수도 있다.

더욱이 대통령 방일에 맞춘 일본정부의 30억달러 차관제공, 기업의
대산유화단지 20억달러 투자가 가시화단계에 접어든 상황이다.

돈줄을 쥔 쪽에서 띄운 애드벌룬을 한국 정부가 못본체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쿠라 대사의 제안은 비상한 관심을 끈다.

오쿠라 대사는 이날 자신의 제안에 대한 배경설명까지 자세히 곁들였다.

"양국은 서구를 따라만 갈 것이 아니라 공동관심사에 대한 규칙을 확립하는
데 주도권을 행사해야한다".

이는 세계경제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동북아경제권의 태동을 염두에
두고 한 발언으로 봐야한다.

아시아에 경제위기가 닥친 이후 일본은 초조하다.

일본을 불안케하는 요인들은 안팎에 널려있다.

냉전이후 세계경제를 3분해온 일본경제는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안마당이나 다름없던 동남아는 경제위기에 정치불안까지 겹쳐
괴멸상태다.

반면 중국은 "화교경제권 구축"을 염두에 두고 일본의 대체세력으로
부상중이다.

유럽은 이미 통화통합까지 이뤄냈고 미국은 말그대로 "유아독존"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대사가 김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경제통합"을
연구해 보자고 제의한 것은 결코 해프닝이랄 수는 없다.

대구계명대 권업 교수는 "일본은 경제블록이나 지역전개(regionalization)에
관한한 미국 영국에 버금가는 경험을 갖고있다"면서 "그런 일본이 이를 거론
할 때는 준비할 시기가 됐다고 보기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에대한 한국의 반응은 아직 실무 차원에 머물러있다.

외교통상부나 산업자원부 실무자들의 분석은 일단 부정적이다.

자유무역지대나 경제통합을 위해선 상호비교우위적인 분야가 뚜렷해야하는데
한.일 양국은 그 반대라는 것.산자부 관계자는 "두나라의 수출순위 50개
품목가운데 자동차 선박 전자 등 총 24개 품목이 경합할 정도여서 득보다는
실이 크다"고 말했다.

상호교역도 마찬가지라는 시각이다.

일본은 워낙 무역흑자를 많이 내다보니 이를 완충하기위해 수입관세를 계속
낮춰왔다.

자동차의 경우 수입관세가 "제로"다.

이런 일본과 자유무역이나 투자협정을 맺어봐야 한국의 일본수출이 대폭
늘어날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것.

따라서 내년에 수입선다변화 조치(주요 일본상품 수입금지조치)가 완전히
해제되면 그 파장을 지켜본 다음 판단해도 늦지않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유무역지대나 경제통합의 이해득실을 단순히 교역이나
투자효과만으로 결론짓는 것은 성급하다.

어차피 한국은 IMF체제에서 싫든 좋든 세계를 향해 열린 시장을 지향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 그 방향으로 가고있다.

미국과 추진중인 투자협정이나 칠레와 검토중인 자유무역협정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다.

박태영 산자부 장관이 일본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한.일 민관합동투자
촉진 협의체"추진도 그 맥을 같이한다.

게다가 현재 전개되는 세계경제질서의 변화속도에 비추어 양국은 지역경제
협력체제에 대한 입장정리를 서둘러야 할것같다.

이런 관점에서 이 문제는 조만간 양국의 최대 현안으로 부상할 소지가 크다.

< 이동우 기자 leed@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