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끝났지만 여야 강경대치 국면은 그대로다.

지난 연휴기간 중 물밑 접촉이 계속됐음에도 특별한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게 여야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이렇게 가다가는 꼬이는 정국도 정국이거니와 예산국회 민생국회인 정기국회
도 제대로 운영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더욱이 검찰은 조만간 김윤환의원을 비롯한 상당수의 한나라당 의원들을
소환한다는 방침이어서 "표적 사정"논란이 또 한차례 거세게 일 전망이다.

또 사정당국이 "판문점 총격요청설"과 관련, "안기부 고문조작설" 공방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주말께 이회창총재의 친동생인 이회성 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조사할 방침이어서 정국은 자칫 "정치실종"의 상황
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김대중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한 뒤 귀국하는 10일을
시한으로 정치적 절충을 벌이되 그 이후는 단독으로라도 국회를 운영하겠다
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계속 강경기조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일단 국회에 들어간 뒤
원내투쟁을 전개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딜레마에 빠져 있다.

정국 정상화를 둘러싼 여야의 입장과 전략을 알아본다.

<> 국민회의.자민련 =이른바 "세도사건"이나 "판문점 총격 요청사건"은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아니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고 한나라당에 "선
등원 후 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연휴 이후에도 국회정상화의 묘안이 보이지 않는데 내심 답답해
하는 모습이다.

집권 여당으로서 국회가 한달 이상 공전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회의는 6일 조세형 총재권한대행 주재로 간부회의를 열고 당분간 여권
단독으로 국회를 운영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국민회의는 당초 8일 속개되는 본회의에 야당을 끌어들여 국정감사 일정을
확정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연휴기간 중 한나라당과의 막후 협상에서도 별 진전이 없자 이같은
정상화 방안을 사실상 포기했다.

국민회의는 특히 한나라당이 여야총무간 합의사항마저 파기하는 등 강경
일변도로 흐르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조 대행은 간부회의에서 "사정문제를 빼고 나머지는 뭐든지 얘기할 수
있다"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한화갑 총무도 "여야간 대화의 물꼬를 열 만한 방안이 없는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정치는 최선이 아니면 차선, 최악이 아니면 차악을 선택하는 것"
이라고 말해 여야간 대화채널이 언제든 가동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한편 김대중 대통령은 이날 "판문점 총격 요청사건은 물론 야당의 고문
주장에 대해서도 철저히 조사토록 지시해 놓았다"고 말해 정국 정상화에
관한 복안을 갖고 있음을 시사했다.

김 대통령은 경향신문과 가진 창간 기념회견에서 "야당은 탄압이건 고문
이건 조작이건 문제점이 있으면 원내에서 국정감사 등을 통해 추궁할 수
있다"면서 "관계기관의 수사는 수사대로 하고 야당은 원내에 들어가야 한다"
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특히 "어떤 경우에도 고문은 용납하지 못한다"며 "국립과학수사
연구소의 조사결과를 지켜 보겠다"고 말해 고문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관련자들을 문책하겠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김대통령은 그러나 여야 영수회담 개최여부에 대해서는 "지금은 영수회담을
논할때가 아니라 야당이 국회에 들어가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 한나라당 =연휴 동안 민심 동향을 좇는데 촉각을 곤두세워온 한나라당
분위기는 여전히 강경 기류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정부여당의 "이회창 총재 죽이기"와 야당파괴 공작이 중단되기는 커녕 날로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물러설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판문점 총격 요청 의혹사건"의 경우 이 총재의 정치생명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정부여당의 의도가 개입된 "공작"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그동안의 편파 보복사정과 서울역집회 폭력사건에 대한 민심 이반 현상을
서둘러 덮기 위해 무리수를 둔게 분명한 만큼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질 때까지 강경 기조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부영 야당파괴저지투쟁위원장은 "현 정권은 무리를 거듭해 가면서 하루
한 건씩으로 때워 가는 정치를 하고 있다"며 "여기서 물러나면 한나라당은
도덕성 정통성을 모두 잃게 된다"고 강조해 이같은 분위기를 대변했다.

당내에서는 그러나 김대중대통령이 귀국하는 10일 이후부터는 국회에 등원,
원내외 투쟁을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판문점 총격 요청 의혹사건에 대한 국정조사권 발동을 명분으로 자연스레
국회에 들어가면 등원 거부에 따른 여론의 비판도 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 이의철 기자 eclee@ 김형배 기자 khb@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