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초 정부에 의해 거부된 5대 그룹의 빅딜안이 추가협의의 산고끝에
7일 다시 발표됐지만 핵심과제였던 반도체부문 책임경영주체 선정이 또 미뤄
지는 등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해 미완에 그치고 말았다. 그동안의 정부
독려와 재계 노력으로 보아 이번에는 좀더 확실한 구조조정안이 나올 것으로
믿었던 국민들의 기대에는 미흡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기업구조조정은 가능하다면 빠른 시일내에 매듭짖는 것이 국민경제 회생을
위해 도움이 된다는 일반적인 기준에서 그같은 평가는 피할수 없을 것 같다.
금융감독위원회와 산업자원부가 즉각 재계의 합의안에 대해 전반적으로
미흡하다는 평가를 내리면서 5대그룹 기업에 대해서도 기업개선작업(워크
아웃)절차를 밟는 방안 등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
한다.

그러나 난제중의 난제인 기업그룹간 대규모 사업교환을 시한을 정해 놓고
서둘러 매듭짖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는 좀더 신중히 판단해야 할 문제다.

일부 업종의 과잉.중복투자가 심각해 기업부실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빅딜을 통해 그룹별 핵심사업을 선택, 기업역량을 집중
시키는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부인할 수 없지만 문제는 빅딜을 성공적으로
끝맺음하기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 두가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룹내
기업들간의 지급보증 등 복잡한 금융관계와 과잉설비처리, 인원조정 등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만약 그에 대한 구체적인 후속대책도 없이 사업
교환 원칙에 합의부터 한다면 결국 실패로 끝날 확률이 높다. 재계가
국민들의 기대만큼 시원스런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같은 우려가 상당부분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동안 빅딜은
정부간섭없이 기업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도 그같은 이유에서다.

물론 재계는 지금의 우리경제 현실이 좀더 강도 높은 구조조정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회생의 기회마져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직시할 필요
가 있다. 개별기업의 이해를 떠나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합의안 도출에 좀더 과감한 용단을 내려야 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는 대기업 빅딜이 좀더 신속하게 마무리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정부가 우격다짐으로 추진해야할 사안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가장 바람직한 방안은 재계가 스스로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퇴출당할 수 밖에 없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그 결과는 기업의
판단과 선택에 맡기는 것이다.

재계가 고심끝에 내놓은 방안이 다소 기대에 못미친다 하더라도 정부는
직접 나서기 보다 여건조성에 주력해야 한다. 더구나 재계가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자체적인 구조조정의 지속적 추진을 약속한 만큼 일단 그 성과를
지켜보는게 좋을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