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동호회인 대한투자신탁 기우회의 가장 큰 자랑은 오랜 "전통"이다.

기우회는 20여년전 대한투자신탁의 전신인 한국투자공사 시절부터 시작된
모임.

지금은 본사와 수도권내 직원 70여명이 "득도"를 위해 정진하고 있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기우회 동아리방에 감도는 긴장감과 열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시간때우기 냄새도 찾아 볼 수 없다.

실내는 정중동-.

바둑돌 소리만 청아하게 울린다.

IMF체제로 주눅든 직장인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곳이다.

기우회는 1년에 두차례씩 사내바둑대회를 연다.

부서간 대항전과 라이벌간 이벤트대국도 수시로 개최한다.

특히 라이벌 대국은 동아리방이 회원들로 미어터질 만큼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

어떤 대국이든 승패는 분명히 갈린다.

그 이면에 수많은 우여곡절과 사연이 배어 있는 것도 역시 바둑이다.

한수를 둘 때마다 꿈틀거리는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지만 이것이 바로 바둑의 묘미다.

방심을 용납하지 않는 현실세계를 도상 연습해 보는 듯한 느낌이다.

우리는 중요 대국일 경우 회원간 무제한 토론을 허용하며 철저한 복기를
한다.

패배의 원인이 상대방보다는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이 과정에서 겸양의 덕도 자연스레 익히게 된다.

물론 기우회도 IMF한파를 비켜갈 수 없었다.

수담을 나누는 공간인 동아리방이 여의도 본사건물 기계실 부속공간으로
줄어들고 짭잘한 대회부상도 사라졌다.

그러나 회원들의 열기는 전보다 더 뜨거워진 느낌이다.

바둑보다 더 저렴한 비용으로 판단력과 인내심을 기를 수 있는 취미생활도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IMF위기를 헤쳐 나갈 묘수를 바둑에서 찾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물론 직접적인 도움은 안되지만 마음가짐만은 확실히 챙길 수 있다.

"최선의 길"이 있으면 정면으로 승부를 거는 도전의식이 그것이다.

바둑을 둘 때처럼 항상 스스로를 추스리고 정진한다면 현실에서도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한동직 < 대한투자신탁 반포지점장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