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계속되는 엔화 폭등 사태 속에 헤지펀드들의 동향이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러시아와 중남미에서 큰 타격을 입은 헤지펀드들이 이번 엔화상승
으로 또 한차례 막대한 환차손을 입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요즘 엔화폭등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헤지펀드들의 달러투매 때문인 점을
감안하면 헤지펀드가 세계금융시장을 다시한번 뒤흔들 가능성도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의 대표적 헤지펀드중 하나인 타이거 펀드는
이달 들어서만 18억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이는 타이거 펀드의 자기자본 2백억달러중 9%에 해당하는 규모다.

타이거 펀드의 손실내역은 자세히 공개되지 않았지만 평소 이 펀드의 투자
행태로 미루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타이거 펀드는 그동안 일본에서 초저금리의 엔화자금을 차입해 달러자산을
매입하는 "캐리 트레이드" 투자를 해왔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 투자방식이 두가지 잇점을 갖고 있었다.

첫째는 세계의 어떤 자금보다도 금리가 싸다는 점이다.

게다가 엔화가치가 계속 떨어짐에 따라 가만히 앉아서도 막대한 환차익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면서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엔화가치가 오른 만큼 빚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엔화의 추가하락을 예상해 "엔매도-달러매입" 포지션을
취했던 터라 이중의 손실이 발생하게 됐다.

타이거 펀드는 뒤늦게 이달초부터 달러자산을 팔아치우고 엔화를 매입,
부채를 상환하는 쪽으로 포지션을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여기서 사단이 발생했다.

타이거 펀드의 이같은 움직임을 포착한 다른 헤지펀드들이 덩달아 포지션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투기자본의 대표적 속성인 "양떼(herd)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헤지펀드들이 이처럼 대거 엔매입-달러매도 포지션으로 전환하자 엔화
상승속도는 더욱 가파라질 수 밖에 없다.

최근 몇일새 엔화가 20% 가까이 폭등한 것도 펀드들의 달러투매가 주요인
이었던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투자전략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헤지펀드들이 상당한 손실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펀드들이 달러를 팔아치울수록 남아있는 달러자산의 가치는 하락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손실이 헤지펀드에서 끝나지 않는다는데 있다.

헤지펀드의 부실화는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대형 투자은행들의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TCM)의 사례가 보여주듯 헤지펀드의 대규모 투자
손실은 곧바로 수많은 투자은행에게 전가될 수 밖에 없다.

미국 금융당국도 이를 감안, 엔화의 과도한 절상을 저지하기 위해 모종의
조치를 취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실제로 8일 런던 외환시장에서 달러화가 12엔이나 폭락하자 미국의 뉴욕
연방준비은행(FRB)은 뉴욕시장 개장직후 주요 은행 딜러들에게 전화를 걸어
환율동향을 점검했다.

금융계에서는 헤지펀드들의 손절매식 포지션 전환이 끝날때까지 미 FRB가
수시로 시장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며 엔화의 급격한 절하를 막으려 들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 임혁 기자 limhyuc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