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국독립을 회복하고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삼년동안 풍찬
노숙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고 이 곳에서 죽노니, 우리들
이천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을 힘쓰고 농업 공업 상업 등
실업을 일으켜, 나의 뜻을 이어 자주독립을 회복하면 죽는자 유한이
없겠노라"(동포에게 고함, 1910년 3월25일 대한매일신보)

1909년 10월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하고 31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안중근 의사가 무대에서 부활한다.

서울시립극단(단장 김의경)은 30일~11월4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대한국인 안중근"을 공연한다.

IMF관리체제란 국난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우리들에게 "진정한 애국심"이
무엇인지를 되새기게 하는 연극이다.

안중근 의사가 당시 일제의 여순지방법원에서 재판받는 과정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 연극은 음악 무용적 요소가 어우러진 총체극 형식으로 꾸며진다.

대한의군 참모장으로 일제와 맞서왔던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가 만주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블라디보스토크의 대동공보사에
나타난다.

안의사는 이곳에서 우덕순을 만나 이토 히로부미를 없앨 준비를 한다.

이들은 조도선, 유동하를 동지로 맞아들이고 이토 히로부미를 태운 특별
열차가 지날 예정이었던 채가구역으로 출발한다.

안의사는 이 열차가 새벽에 채가구역을 지난다는 사실을 알고 종착역인
하얼빈역으로 향한다.

안의사는 이 곳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한 뒤 체포된다.

여순지방법원은 피고의 권리를 모두 무시한 채 재판을 진행, 안의사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안의사는 항소를 하지 않고 사형이 집행되기를 기다리며 자신의 전기
"안응칠의 역사"와 "동양평화론"을 집필한다.

안의사는 1910년 3월26일 "동양평화론"를 다 쓰지 못한 채 사형대에
오른다.

희곡을 쓴 김의경은 "편협한 민족사관이나 애국사관에 입각해 안의사를
미화하기 보다는 청년 안중근의 진실을 그리려 했다"고 말했다.

표제순이 연출하고 김영동이 음악을 만들었다.

안의사역은 김갑수가 맡았다.

장민호 박정자 전무송 기정수 유영환 등이 출연한다.

시립뮤지컬단, 국악관현악단, 무용단, 합창단 소속 단원들이 함께한다.

평일 오후 7시30분, 토.일 오후 3시, 7시30분, 학생특별공연 11월2일~4일
오후 3시.

399-1647.

< 김재일 기자 Kji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