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행정부와 의회가 잠정합의한 1백80억달러 규모의 국제통화기금(IMF)
지원법안에 한국이 IMF로부터 받은 구제금융을 국내산업을 위해 사용할 경우
한국에 대한 추가지원 제공에 반대해야 하는 의무조항이 포함됐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아무리 "빚진 죄인"이라는 말도 있지만 어떻게 주권국가에 대해
이같이 일방적이고 모욕적인 요구를 할 수 있는 건지 미국의 상식을 의심케
한다.

우리는 잠정합의안의 이같은 조항들은 동시에 한.미간의 전통적인 우호관계
를 크게 해치는 매우 유감스러운 내용으로서 즉각 삭제해야 마땅하다고 생각
한다. 특히 이같은 움직임을 사전에 감지한 우리정부의 우려표시에도 불구하
고 이런 결과가 나온 것으로 알려져 더욱 개탄스럽다. 우리는 특히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이번 잠정합의안의 일부 내용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먼저 한국에 대한 IMF지원에 새로운 조건을 단 것은 문제가 있다. IMF가
긴급자금 지원을 결정했던 지난해말부터 이미 미국측과 IMF는 구제금융이
위기에 빠진 한국산업 지원에 이용돼서는 안된다는 뜻을 밝혔고 또 그동안
꾸준히 감시해왔다. 이에 대해 우리정부도 IMF가 지원한 1백80억달러 전액을
외환보유고 확충에 썼다고 해명했다. 그런데도 새삼스럽게 일방적인 조건을
덧붙여 한국에 대한 IMF의 지원을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려는 것은 이해못할
처사다.

미국 재무부로서도 "IMF자금이 한국산업에 지원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일일이 증명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돈에는 꼬리표가 붙어 있지 않은
이상 미국측이 만약 간접적인 지원까지 물고 늘어진다면 IMF지원은 더이상
없게된거나 같다. 하지만 위기당사국들의 입장에서는 경제위기를 극복하자면
산업부터 살려야 하며 산업을 살리자면 구조조정 과정에서 간접적으로는
지원할 수도 있게 된다. 때문에 자금용도에 대한 일방적인 규제는 구제금융의
취지에 걸맞지 않는다.

더구나 왜 한국만을 지목해 까다로운 조건을 붙였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캉드쉬 IMF총재의 칭찬대로 가장 IMF의 요구사항을 충실하게 지켜온 나라가
바로 한국인데 말이다. 그게 만약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의 산업분야에서
한국기업과 경쟁관계에 있는 미국기업들의 로비 때문이라면 세계경제를 위해
극히 불행한 일이다. IMF를 앞세워 자동차협상이나 농산물시장 개방에서
노골적으로 압력을 행사하겠다는 미국의 의도는 공정한 무역질서를 해칠 뿐만
아니라 미국의 전횡에 대한 다른 나라들의 반발만 불러올 것이다.

비록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기는 하지만 IMF 지원법안을 예산안에 연계시키
는 등 미국 의회의 지나친 자국이기주의는 전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 움직임
을 확산시켜 가뜩이나 불안한 세계경제를 자칫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을
염려마저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