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계 고교가 몰락하고 있다.

"졸업이 곧 취업"이라는 얘기는 옛말이 됐다.

경기가 좋았을때 각 기업들이 2, 3학년학생들을 입도선매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까지 벌였던 것에 비하면 상황이 1백80도 뒤바뀌었다.

불과 1년전만 해도 취업희망자의 90% 이상이 기업체에 근무할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졸업생 두명중 한명은 놀아야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해졌다.

지난 2월 졸업생만 해도 91.6%가 직장을 구했지만 올해는 취업률이 50%를
간신히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실업계고교 학생의 경우 3학년때 산업체에 나가 1~6개월 가량 근무하는
"현장실습참여율"로 취업률을 쉽게 예측할수 있다.

통상 기업체들이 필요한 인력만큼 실습생을 받아들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한 그 인원을 그대로 직원으로 채용하기 때문.

교육부 집계에 따르면 상업계 고교의 올해 실습참여율은 25.5%.

전체 학생의 4분의 1정도만 "예비취업"을 한 셈이다.

지난 2월 졸업생의 경우 90.5%의 취업률을 보인 것과 대조적이다.

같은 시기에 94%의 취업률을 기록했던 공업계 고교생들도 올해 실습참여률이
65.1%로 떨어졌다.

농업.수산계 고교생도 사정이 별로 나을게 없다.

농업계 고교생의 경우 지난 2월 졸업생의 83.1%가 직장을 구했지만 올해
실습참여율은 45.9%에 그치고 있다.

수산계 고교생의 실습참여율도 74.6%로 2월 졸업생 취업률(82.3%)을
밑돌고 있다.

이같은 수치를 근거로 할때 전체적인 실업계고교 학생들의 취업률은 지난
2월 졸업생의 91.6%보다 크게 낮아져 50%를 간신히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더구나 이같은 실습참여율 통계가 지난 8월말까지 실제 산업체 실습에
참여한 학생에다 이달말까지 실습이 예정된 학생을 포함시킨 것이어서
기업들의 사정에 따라 실제 실습참여율이 더 줄어들 수도 있다.

신휘창(63) 경기상고 교장은 "지난해만 해도 취업률이 80%정도였지만
올해는 실습에 참여하는 학생수가 18%에 그치고 있다"면서 "경기침체 등의
여파로 과거 상고 출신 학생들이 많이 진출했던 은행 등 금융권 사무직에는
1명도 취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업계 학생들의 수난은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정리해고 열풍이 주로
실업계고교 출신인 공장근무자로 집중되면서 나타났다.

이들 업체에서 신규 인력 채용이 거의 끊긴 것.

이에 따라 과거 한 학생이 4~5개 업체중에서 맘에 드는 업체를 고르던
"호시절"도 먼옛날의 추억이 돼버렸다.

학교와 교사가 직접 나서서 기업체에 학생들을 데려가 달라고 통사정해야
하는 실정이다.

특히 취업한파가 상업계고교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전국 실업계고교 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상업계 고교 학생들이기 때문.

기업들이 신규 사무인력을 거의 뽑지 않으면서 상고출신 학생들이 졸업을
해도 갈곳에 없어진 것이다.

그동안 꾸준히 사무자동화가 추진돼 인력이 거의 필요치 않은 탓도 있다.

현재 전국 실업계 고교수는 7백74개.

모두 82만9천여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다.

이중 상업계 고교 학생이 43만1천여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공업계고교 학생은 35만1천9백여명.

졸업을 앞둔 3학년학생 27만1천92명중 상업계 학생이 14만4천6백72명이다.

< 이건호 기자 leek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