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근무하는 김병원(41) 부장의 아침식사는 농심켈로그의 씨리얼과
한국네슬레의 테이스터스 초이스커피 한잔.

점심은 신세대 직장후배들과 피자 헛의 피자로 대신했고 저녁에는
베니건스에서 두산씨그램 진을 마신다.

사용하는 티슈는 유한킴벌리의 크리넥스, 비누는 P&G의 아이보리.

개인용 컴퓨터는 IBM 노트북이고 회사에서 쓰는 컴퓨터는 한국컴팩제품.

여기엔 한국휴렛팩커드의 레이저프린터가 붙어있다.

운전할때 쓰는 선글라스는 바슈롬의 레이밴, 간식때 마시는 음료수는
한국코카콜라의 다이어트 콜라.

김 부장의 하루는 이처럼 외국제품과 떼려야 뗄수가 없다.

우리 주변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외국제품이 널려 있다.

이들중 상당수는 몇년전까지만 해도 해외에서 수입된 것들.

하지만 지금은 한국기업과 손잡거나 단독법인 형태로 들어온 외국기업이
국내에서 생산한 것들이다.

아침 식탁에 오르는 반찬중 상당수는 외국계 할인점에서 사온 것들이다.

화장지 샴푸 치약 건전지 음료등 생활용품에서 전기전자 기계 금속 등
산업용품, 그리고 유통 컨설팅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외국기업은 구석구석을
파고들고 있다.

외국기업은 한국인의 생활환경을 혁명적으로 바꿔 놓고 있다.

몇달전에 상륙한 월마트가 대표적인 예.

세계 최대유통업체 월마트는 가격파괴 경쟁에 불을 질렀으며 유통업이
제조업에 이끌려 다니는게 아니라 제조업을 선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몇몇 분야는 아예 외국기업 중심의 격전장으로 변하고 있다.

에버레디 질레트가 각축을 벌이는 전지분야를 비롯 킴벌리와 P&G가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화장지 생리대및 생활용품 분야도 비슷하다.

이런 현상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합작형태에서 단독투자법인으로 전환하는 사례도 부쩍 늘고 있다.

바스프는 한화바스프우레탄의 한화측 지분을 인수, 1백% 단독법인으로
전환했고 맥주업체인 쿠어스, 산업용 로봇 등을 만드는 화낙과 휴렛팩커드
등도 각각 독자법인으로 새출발했다.

물밀듯 몰려오는 외국기업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우리가 원하든 원치않든 삶의 일부로 자리잡기 시작한 외국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은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이 있다.

부정적인 시각은 거대 자본과 세계적인 브랜드를 이용한 시장지배, 국내
경쟁사의 도산촉발에 주로 근거를 두고 있다.

임금착취라는 고전적인 이유는 거의 사라진 대신 시장지배에 대한 염려
등을 바탕으로 한 배타적 시각이 아직 남아 있다.

그러나 한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이 외환위기를 넘는 동반자이고 동시에
고용창출과 성장의 기관차 역할을 하는 고마운 존재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부쩍 늘었다.

외국기업의 진출없이 외환위기극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인식이 뿌리내리면서 외국기업은 이제 점령군이 아니라 어려움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친구라는 인식이 급속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한국에 진출한 기업들은 한국인의 복잡한 정서를 십분 이해, 세심한
전략을 짜고 있다.

전략은 한마디로 글로컬리제이션으로 요약된다.

글로벌리제이션(세계화)과 로컬리제이션(현지화)의 합성어인 이 말은
다국적기업의 글로벌화된 첨단 경영노하우를 십분 활용하되 철저한 현지화를
통해 현지인과 동화하는 것.

특히 현지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예컨대 종업원은 물론 경영진 대부분을 한국인으로 채우고 환경보호 사회
복지활동을 펴며 원부자재의 상당부분을 한국에서 사는 등 한국에 기여하는
기업으로 뿌리내리려 노력하고 있다.

필립스코리아가 보물 1호인 동대문의 조명시설이 취약하다는 지적에 따라
3억5천만원상당의 조명시설을 서울시에 기증한 것이나 레고코리아가 거북선
조립대회를 열면서 이 행사에서 나오는 수익금 전액을 백혈병어린이 돕기에
사용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

또 한국시장에 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수출에 나서 외화벌이의
역군이 되려고 힘쓰고 있다.

GE 필립스코리아 등은 한국산 제품을 각각 연간 수억달러에서 10억달러씩
수출할 것을 추진중이다.

한국무역협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백대 수출기업 가운데 한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이 10개나 들어있을 정도로 수출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핀란드의 노키아TMC가 전화기를 수출, 내.외국법인을 합쳐 수출랭킹 16위를
차지했다.

한국소니전자는 CD롬드라이브용 광픽업장치와 헤드폰등 각종 전자부품,
모토로라코리아는 반도체, 로움코리아는 집적회로 다이오드 저항기로 각각
1억달러이상씩 수출했다.

이들은 올해 수출을 더욱 늘릴 계획이다.

이미 상반기중 20~30%씩 수출을 확대한 기업도 많다.

IMF 이후의 원화가치하락으로 수출경쟁력이 더욱 높아진 것도 하나의 요인
이지만 외환위기를 넘는 동반자라는 시각이 작용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외국기업은 수출 고용 구매 등의 측면뿐 아니라 첨단기술과 경영을 전수
한다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들은 세계적인 기술력을 접목시키고 있으며 인사 조직 마케팅 재무 등의
앞선 경영기법으로 한국기업에 자극을 주고 있다.

예컨대 유한킴벌리는 슬림 앤드 플랫(slim & flat)조직으로 의사결정단계를
2~3단계로 대폭 단축시키고 있으며 ABB코리아는 아예 담당자에게 결재권을
줬다.

이같은 방식은 스피드경영을 가능케 해 신속한 대응과 공격적 경영을 하게
해준다.

또 연봉제와 스톡옵션제를 비롯한 소득면에서의 인센티브제도입과 앞선
재무및 위험관리기법 등을 도입, 벤치마킹대상이 되고 있다.

특히 철저한 소비자중심의 경영은 한국기업들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외국기업진출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면서 진출을 촉진하기 위한 노력도
가속되고 있다.

원스톱서비스나 외국인전용공단 조성 등이 그것이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나름대로 외국기업유치노력을 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걸림돌이 너무 많다.

남아 있는 규제도 아직 많다.

외국기업유치를 더욱 촉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외국기업 경영자들은 공통적으로 배타적인 분위기의 조기 불식과 한국기업의
투명경영 정착을 꼽는다.

특히 외국기업이 돈을 벌어가는 것을 배아파해선 안된다고 휠라코리아
윤윤수 사장은 지적한다.

오히려 외국기업이 한국에 들어와서 이익을 많이 남겼다는 소문이 퍼질때
외국기업들은 아무리 말려도 돈을 싸들고 들어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외국기업이 한국에 진출할땐 기존 기업을 인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직도 국내기업은 정확한 자산과 부채가 얼마인지 명확하지 않아
의사결정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투명경영만이 외국기업 유치를 촉진하는 유인책이 될 것이라고 한국바슈롬의
이철영 사장은 말한다.

IBM재팬과 도요타USA중에서 도요타USA가 더 미국적인 기업이라는 답변처럼
휠라코리아와 삼성전자 오스틴현지법인중 휠라코리아가 더 한국적인 기업
이라는 인식이 뿌리내릴때 비로소 외국기업진출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다.

[ 기획취재팀 : 김형수 부장(산업2부.팀장)
김낙훈(산업2부) 김광현(유통부) 한우덕(국제부)
손희식(정보통신부) 노혜령(산업1부) 이성태 기자(경제부)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