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재벌이 시중자금을 독식해 자금흐름이 막히고 있다"며 한시적으로
5대 그룹 회사채 및 CP발행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힌 김태동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의 발언은 주목할만 하다. 즉각적으로 회사채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내용이란 점에서도 그러하지만 빅딜 등과 관련, 5대그룹과
정부간 기류가 미묘한 시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올들어 9월말까지 발행된 회사채(34조원규모)중 5대그룹 물량이 거의 80%
에 육박하는 26조8천5백억원이나 된다는 점은 누가 보더라도 정상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원인을 따져보면 해결책에 대한 시각은 김 수석의
그것과 달라질 수도 있다.

은행 등이 회사채 발행에 대한 신규 지급보증을 사실상 전면 중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 보증보험회사 회사채 지급보증은 공신력을 상실한
단계인 것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회사채를 발행
할 수 있는 곳은 무보증으로 내놓더라도 팔리는 5대 그룹등 극소수의 대기업
으로 좁혀질 수 밖에 없다.

김 수석이 생각하는 것처럼 5대 그룹 회사채 발행제한이 중소기업에 대한
원활한 자금지원을 결과할 수 있다면, 다른 측면에서 부작용이 있다고 하더
라도 5대 그룹에 대한 한시적 제한도 방법일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회사
채시장만 위축시키는 꼴이 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우리는 후자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15일 회사채 유통수익률이 하룻
새 0.5%포인트나 급락한 것만 봐도 그럴 공산이 크다. 5대 그룹에 대한 발행
제한으로 회사채물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회사채 선취매를 불러 유통
수익률이 크게 떨어졌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재무구조가 좋은 투자적격등급의 우량회사채 물량을 인위적으로 줄이는
꼴이 된다면, 그것은 행정규제로 인한 시장의 왜곡을 결과한다고 볼 수 있다.
회사채발행을 자유화한지 얼마나 됐다고 또 규제에 나서겠다는 것인지 이해
할 수 없다. 바로 그런 발상은 시장기능에 따른 자유화를 기본으로하는 경제
정책방향과도 걸맞지않는다.

회사채시장의 5대 그룹 편중을 막으려면 은행 종금 증권회사의 보증기능을
되살리는 것이 선결과제다. 보증보험회사의 영속성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있도록 공신력을 높여주고 중소기업 보증회사채발행이 늘어나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 중소기업이 금융기관 보증을 받아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다면, 또 투신사 등이 이들 중소기업 보증채를 수익증권에 대거 편입한
다면 5대 그룹에 대한 발행제한과 같은 궁색한 정책은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빅딜에 대한 불만 때문에 5대 그룹 회사채 발행제한 구상이 나왔다는 추측
도 없지않은 것같다. 그러나 그런 억측은 정책발상의 동기가 그렇게 편협하고
옹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논평할 가치조차 없다고 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