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전자는 지난해 프랑스의 국영전자회사인 톰슨멀티미디어를 인수하는
대신 프랑스에 15억달러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
눈길을 끌었다.

대우가 막대한 경영적자에 시달리던 톰슨을 거액에 인수하려 했던 것은 이
회사가 가지고 있는 브랜드 때문이었다.

다른 국내가전업체들과 마찬가지로 대우도 고유브랜드보다는 OEM(주문자
상표부착생산) 방식의 수출이 50%를 웃도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톰슨을 인수할 경우 "RCA"나 "텔레풍겐" 같은 유명브랜드를 소유함으로써
단시일안에 세계적인 가전회사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게 대우의 판단이었다.

이같은 대우의 사례는 한국상품이 브랜드이미지가 낮아 그동안 세계 톱
브랜드들과의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OEM 위주의 수출로 양적 팽창에 주력해온 반면 자가브랜드의 개발에는
소홀했다.

"한국상품은 싸구려"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미지를 가져온 것이다.

선진국의 기술을 넘지 못하고 중국 동남아 등 저임금 국가에 가격경쟁력마저
추월당한 지금에와서야 브랜드육성의 기회를 놓쳤다고 후회하는 기업이 많다.

아프리카 오지의 원주민들도 알고 있다는 코카콜라.

풍요의 미국을 상징하는 이 청량음료의 브랜드가치는 5백억달러(약 70조원)
정도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코카콜라의 브랜드가치가 이처럼 높다는 것은 "고객이 갈증을 느낄 때엔
자동적으로 코카콜라를 집어들도록 만들었다"는 말과 똑같다.

강력한 브랜드는 소비자가 가격에 상관없이 항상 그 상품을 구매하도록
만드는 로열티(애호도)를 형성시킨다.

이는 기업에 "우리제품을 사달라"고 끊임없이 광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의미한다.

마케팅비용이 그만큼 줄어드는 셈이다.

브랜드가 기업의 경영전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하이트맥주의 성공사례
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이트가 나오기 전까지 조선맥주는 경쟁사인 OB맥주에 눌려 만년 2위에
머물러 있었다.

이 회사가 아무리 신제품을 개발하고 광고공세를 펼쳐도 "조선맥주는 쓴
맛이 난다"는 기업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조선맥주가 하이트를 개발하며 구사한 극약처방은 제품명에서 아예 조선맥주
라는 회사명을 빼버리는 개별브랜드전략이었다.

대신 지하암반수를 이용해 새로운 맥주를 만들었다는 이미지를 강조했다.

소비자들은 하이트를 신개념의 브랜드로 받아들였다.

그결과 조선맥주는 OB맥주의 50년 아성을 무너뜨리고 1위 제품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리서치회사인 JD 파워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브랜드 로열티를 가진
한사람의 고객을 잃을 경우 회사가 입는 손실은 무려 1만달러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처럼 막강한 위력때문에 브랜드는 이제 부동산이나 주식을 뛰어넘는
최고의 기업자산으로까지 대접받고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제품의 실체보다는 이미지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제조기술이 평준화됨으로써 제품의 품질을 차별화
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좋은 브랜드가 갖는 위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요즘같은 불황기에는 단골고객들의 이탈을 막기 위한 브랜드관리가
더욱 중요하다.

마케터들은 국내 기업들도 세계적인 명품을 만들기 위해선 본격적인 브랜드
가치창출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성제 인터브랜드코리아 대표이사는 국내기업의 세계화 브랜딩전략 과제를
여섯단계로 제시했다.

첫째 글로벌 브랜드네임으로 기업명을 바꿔야 한다.

둘째 기업명과 제품브랜드네임이 동일한 브랜드체계를 갖춰야 한다.

셋째 기업의 심벌마크는 창조성과 차별성을 강조해야 한다.

넷째 기업 심벌마크와 엠블렘(제품마크)을 동일하게 사용함으로써 브랜드의
정체성을 높여야 한다.

다섯째 삼성 현대 대우식의 포괄적 그룹 심벌마크는 각 계열사 브랜드의
정체성을 부각시키는데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계열사별 브랜드
로 바꿔야 한다.

여섯째 브랜드매니저제도를 도입해 기업경영을 브랜드경영으로 전환해야
한다.

오창호 한신대 경영학과 교수는 "브랜드는 기업의 미래를 보장해 주는
자산"이라며 "브랜드의 가치를 체계적으로 측정 평가하고 마케팅전략 결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