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경제는 과잉투자의 "참담한 최후"를 경험했다.

외환위기의 원인이 됐던 대기업부도시리즈가 그것이다.

EABC 보고서대로 한국은 지난 89년부터 자본의 효율성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를 알았으면 투자를 조정하는 작업을 실시하는게 옳았다.

기업 스스로가 못하면 정부라도 나섰어야 했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어느 누구도 과잉투자를 제어하지 못했다.

그저 "대마불사의 신화"만 맹신했다.

자본의 효율성을 따지지 않은 과잉투자의 결과가 단초를 나타낸건 지난해
1월.

총자산 기준 재계서열 14위였던 한보철강이 부도를 내면서부터다.

이후엔 하루가 멀다하고 대기업들이 쓰러졌다.

삼미 진로 대농 한신공영 기아 쌍방울 해태 뉴코아 수산중공업 한라 청구
등.

1백대기업에서만 12개가 부도를 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자신의 능력과 환경을 감안치 않은 무리한 사업확장.

철강 전자 유통등 자신들과는 전혀 생소한 부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특히 이들 기업을 떠맡은 2세경영인들은 "미래산업"을 부르짖으며 생소한
영역에 손을 댔다.

부족한 자금은 부동산과 로비를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끝없이 차입해 왔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12개 대기업의 금융권부채만 총 27조3천4백98억원.

은행여신만 17조8천3백97억원에 달했다.

이는 금융기관에 고스란히 부실채권으로 돌아갔고 금융위기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기업들의 손실도 엄청나다.

이들 대기업의 총자산은 46조6천6백69억원.

엄청난 차입을 통해 부풀려 놓은 자산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됐다.

비단 이들 기업만이 아니다.

요행히 작년의 위기에서 살아남았다고 해도 기존 과잉투자의 부담은 지금
까지 남아 있다.

지난 95년까지 이어진 "반도체신화"를 바탕으로 기업들은 너나없이 과잉
투자경쟁에 끼어들었다.

세계적인 공급과잉 조짐이 나타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철강
반도체 석유화학 조선 등 중후장대형 설치산업에 나섰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빅딜"이나 대기업 구조조정도 바로 과잉투자를 강제로
해소하는 작업에 다름아니다.

< 하영춘 기자 hayou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