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현 총장이 한국경제에 대해 내리는 진단은 명쾌하다.

당면한 위기는 과거 정부 기업 금융은 물론 지성과 정치 모두 거품에
취했던 탓이라고 지적한다.

IMF 구제금융이란 비극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라는게 그의 견해다.

그가 제시하는 21세기 한국경제의 청사진은 "선진화"다.

단순히 잘사는 선진화와는 궤가 다르다.

지식 정보 기술 문화 예술에서 세계적 대국이 되는 동시에 교육 환경
도덕분야에서 세계적인 모범국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올바른 시민사회를 만들기 위해 경제발전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 총장은 이를위한 원동력으로 질과 선을 추구하는 "연성의 힘"을 꼽는다.

21세기로 가는 길은 경제는 물론 문화와 정신을 송두리째 갈아엎는
작업이란 지적은 그래서다.

그는 우리 모두 죽었다 다시 깨어나는 그런 참회와 혁신으로만 가능한
일이라고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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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고 : 한국경제 ]

<> 20년전 싱거 교수의 교훈

지난 79년 당대 후진국 경제개발이론의 대가였던 한스 싱거 교수는
중동경제연구소 초청으로 3개월간 한국에 체류하며 한국경제를 진단했다.

그는 한국경제의 장래를 2개의 낙관적 시나리오와 하나의 비관적
시나리오에 담았다.

낙관적인 시나리오중 첫번째는 선진국을 상대로 한 수출성장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막내동생이 되는 것이고 두번째는 적정기술과
중간기술을 개발, 후진국을 상대로 한 수출전략으로 제3세계의 맏형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이 가운데 두번째 시나리오를 권고했다.

비관적 시나리오는 선진국에 대한 수출이 막히고 후진국의 따라잡기로
기술격차가 없어져 한국이 가위 틈새에 끼어버리는 것이다.

20년이 지난 지금 비싼 달러를 써가며 얻은 부즈 앨런이나
매킨지보고서라는 것도 결국 우리가 왜 선진국 따라잡기에 실패했고 중국
동남아등 후진국의 추월에 밀려 가위틈새에 끼었느냐를 설명하는 내용에
불과하다.

20년전 싱거 교수의 진단과 처방은 옳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옳은 것은 한국이 기초를 무시하고 지속적 기술개발의 우월을 추구하지
못해 선.후진국의 가위틈새에 끼어버렸다는 것이다.

틀린 것은 제3세계 후진국의 맏형 전략으로 성장하라는 권고였다.

여기서 우리는 몇가지 교훈을 얻는다.

먼저 아무리 "이론의 대가"라도 "진실의 대가"일 수 없고 처방에 관해선
더욱 대가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한 국가의 생존전략은 결국 그 나라의 의지와 역사성이 전제돼야만
생명력을 가질수 있다.

이론적 또는 기능적 적합성과 효율성만으로 결정돼선 안될 문제라는
얘기다.

사회공동체의 역사성과 소망,그리고 국가적 명제에 대해 외국전문가는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교훈은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에 끊임없이 준엄하지 않고
기초와 기반쌓기를 게을리하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진짜로 믿고 기초 다지기를 게을리했다.

국책연구기관마다 경쟁적으로 2000년대초 10대강국 7대강국 5대강국으로의
도약이란 장밋빛 전망을 내놓으며 거품을 키웠다.

건국 50년간 단 4년밖에 유지하지 못한 "처참한" 경상수지 흑자(아시아의
세마리 용은 물론 중국 동남아도 이런 예가 없다)를 덮어뒀다.

끊임없는 외채증가는 물론 단 한번도 깨지 못한 치욕적인 대일
무역적자와 심화되는 대일 의존도등 갈등구조도 외면했다.

빚도 자산이라고 낭비와 부실을 조장했던 정부 기업 금융 지성의
무실, 정치라는 무신의 공전은 스스로에 성실하고 철저하지 못한 채 거품의
유행가만 부른 역사적 범죄였다.

IMF 구제금융이란 비극은 이같은 범죄에 대한 벌이며 너무나 당연한
인과응보다.

<> IMF졸업 비용과 선진화 비용

지금 한국경제의 기본 명제는 "선진화를 위한 지속성장"의 궤도정립에
있다.

단순히 불황을 탈출해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한다는 것이 아니다.

IMF가 요구하는 은행 기업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만은 더더욱 아니다.

"한강의 부패"를 필연적으로 동반했던 한강의 기적을 부활시키자는
것도 물론 아니다.

시장이나 운명론에만 맡길 수도 없는 문제다.

대한민국 4천5백만명, 남북을 합쳐 7천만명의 생존과 평화 및 발전이란
큰 틀속에서 한국경제의 비전 제도 정책을 정리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경제제일주의와 GNP(국민총생산) 신화에 도취돼 공동체의
기초와 전체를 보는 통합적 주체성을 상실했다.

단순히 성장에 몰두해 국가와 사회의 기본명제를 위해 경제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완전히 놓쳐버렸다.

잘살기 위해 혹은 빚을 갚기 위해 땀 흘리는 것이어선 안된다.

일류 선진국가 건설을 위해 눈물도 흘려야 하고 한반도에 사는 생명들의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는 피도 흘려야 하는 그런 가혹한 삶의 조건속에
있다.

정부에 따르면 은행 부실채권 규모는 1백20조원에 이른다.

외국과 민간 기관에선 1백60조원 또는 2백조원으로 집계한다.

제2금융권까지 합치면 3백조원이란 주장도 나온다.

GNP의 70%에 달하는 부실채권을 정리하기 위해 GNP의 20% 또는 40% 가까운
세금을 바쳐야 한다.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들이 실업과 소득감소를 감내해야 하는
이 과정도 땀만으로는 안된다.

다스리는 자와 백성간에 "큰 눈물" "큰 참회"의 과정을 거쳐야만 IMF
졸업비용을 거둘 수 있다.

그나마 그것도 부실청산 구조조정등 과거를 정리하는데 드는 비용일
뿐이다.

IMF 구제금융을 졸업한다고 해서 우리경제가 선진으로 가는 것도 아니다.

선진으로 가기 위해선 기존 제조업 중심산업에서 지식 정보 과학 기술
문화 예술집약산업, 즉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으로 부가가치 창출의 기반을
바꿔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선진화 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엔 2가지 성격의 비용이 든다.

먼저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의 하부구조 구축과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를
갖추는 비용이다.

그러나 그 비용은 따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현재 제조업의 부가가치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외자이건 내자이건 제조업중에서 이미 경쟁력이 증명된 반도체 조선
자동차 정밀화학과 기술집약 경공업, 그 중에서도 구체적으로 생명력 있는
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세계적 경쟁기업이 되게함으로써 선진화에
필요한 자본을 공급할 수 있다.

구조조정이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정리나 관료 및 정치권의 생색내기가
돼선 안된다.

국민경제의 생존전략과 선진화를 달성하기 위한 산업과 기업의 선택
과정이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로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으로의 전환을 위해선 자본 공급이 아니라
교육 노동 기업 행정 문화 제도 의식등 전반적인 상부구조의 변화가 더욱
중요하다.

이것은 우리 문화와 정신의 구조적 개혁 작업이다.

여기엔 각계 지도자들의 혁명적 변화란 모범이 있어야 한다.

<> 왜 선진이고 어떤 선진인가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선진의 길이 이렇게 많은 고비를 넘겨야 하고 비싼 비용을 물어야 한다면
기어이 선진으로 갈 필요가 있는가.

이 세상엔 국가 목표가 선진국일 필요가 없는 나라, 후진 중진 수준이어도
국가와 시민의 안전및 평화유지에 큰 지장이 없는 나라도 많다.

우리도 그러한가.

아니다.

우리가 거래하고 더불어 살고 겨루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모두
일류선진국이거나 이를 목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최소한의 조건일 뿐이다.

선진국은 돼도 좋고 안돼도 좋은 선택의 과제가 아니다.

반드시 돼야만 하는 필수 과제다.

<> 어떻게 가야 하는가

첫째, GNP 사고방식에서 철저히 벗어나야 한다.

GNP는 후진 중진 선진의 큰 분류에만 의미가 있다.

1만달러 소득을 얻기 위하여 시화호 고속철도 한보철강 기아자동차를
만드느니 차라리 5천달러 소득에서 친환경산업과 정직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선진국에 가깝다.

그것은 연성의 길이다.

공간 노동 에너지 교통 원료 공해 쓰레기 자원을 많이 쓰는 산업은
땅 넓고 강 많고 자원 많은 나라의 몫이다(이 점에선 오히려 선진국
산업이다).

우리는 반대로 공간 에너지 자원 원료 공해 쓰레기 교통 수요가 적은
산업으로 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조건이다.

우리가 지식산업화로 가야하는 이유는 선진국들이 그쪽으로 가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생존조건에 충실한 부가가치 창출의 길이기 때문이다.

전자는 양 규모 강 경의 길이고 후자는 질 격 연 선의 길이다.

우리의 선진화는 따라서 선진화의 길이어야 한다.

둘째로 힘은 북한 김정일식의 군사적 "강성대국"에서 오지 않는다.

우리는 지식 정보 기술 문화 예술에서 세계적 대국이 되어야 하고 교육
환경 도덕분야에서 세계적인 모범국이 되어야 한다.

나이 교수는 미국에서 연성의 힘(soft power)을 주장하고 교육 기술
유연한 제도를 힘의 내용으로 꼽았다.

우리는 첨단기술 특수정보, 그리고 인류적 차원의 가치있는 문화 예술로
선진국을 무릎꿇게 할수 있는 전략분야를 선택 육성해야 한다.

또 환경과 도덕사회의 모범국으로 21세기 세계평화운동의 중심이 돼야
한다.

셋째, 선진경제의 구체적인 그림은 우리의 부가가치가 산업과 상품을
뛰어넘어 사람과 작품에서 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같은 4천억달러 GNP가 대량생산과 소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공간 자원 교통 공해 소비를 반으로 줄여서 나온다면 이미 8천억달러의
효과가 있다.

만일 부가가치 구성이 다음과 같이 된다면 같은 4천억달러 GNP라도 1인당
3만달러 소득수준의 양질의 선진국이 된다.

연 1억달러 규모의 작은 빌 게이츠들이 만든 정보기술기업 2천개, 5백명의
W 쇼클리나 니시자와같은 엔지니어, 10명의 스필버그 같은 감독, 1백명의
백남준 조수미 같은 예술인, 10명의 톨스토이 같은 작가, 50명의 새뮤얼슨
드러커 리프맨 같은 지성, 그리고 단 한명이라도 김구 호치민 드골 대처
같은 도덕적 지도자가 그것이다.

넷째, 프랭클린의 말처럼 옳게 사는 사람과 좋은 시민사회를 만들기
위해 경제발전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의 경제비전은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선진화를 위한 지속성장이어야
한다.

물론 우리 모두 죽었다 다시 깨어나는 그런 참회와 혁신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 꿈과 비전과 용기가 없으면 19세기와 20세기에 그러했듯 한국의
21세기도 타율과 예종의 시간으로 채워질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