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경기에 듬뿍듬뿍 벌어들인 돈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면서 경제를 왜곡시켜
놓곤 한다.
지금은 불황 중의 불황.
그런데도 거품 조짐이 일고 있다.
자금시장부터 그렇다.
금리를 한자릿수로 떨어뜨릴 만큼 시중 자금이 넉넉하다면 돈도 제대로
돌아야 한다.
그러나 중소기업을 하는 사람으로부터 "돈 쓰기가 쉬워졌다"는 얘기는 어느
곳에서도 들을 수 없다.
주식시장도 8개월만에 활황장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 참가자들에겐 기분좋은 일이다.
그러나 주식을 사는 이에게 "실물경기가 깨어날 것으로 보느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하는 이는 거의 없다.
"풀린 돈이 갈 곳이 있겠느냐"고 되묻는 이가 대부분이다.
남이 주식을 살 것 같으니까 미리 사두자는 차원이다.
정부나 민간 경제연구소에선 "내년 하반기면 경기가 기지개를 켤 것"이라고
한껏 기대감을 부풀리고 있다.
그러나 기업현장에선 불황이 장기화될 것이라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더 높다.
풀렸다는 돈은 금융권에서만 맴돌 뿐이다.
무너진 금융시스템이 복원되지 않으니 실물경제로 돈이 흘러들지 않는 것이
다.
물가 걱정이 없는 금리하락, 거기다 한국투자에 관심을 보이는 외국인까지
보초를 서고 있다.
경기부양을 위한 더 없이 좋은 조건이지만 돈의 물꼬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
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다.
불황 속의 거품조짐만 완연하다.
허정구 < 증권부 기자 huhu@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