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웅 < 현대경제연구원장 jwkim@hri.co.kr >

우리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경제문제의 실마리는 금융부문의 구조조정에서
부터 풀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구조조정의 성패는 부실채권의 정리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성
업공사에 달려있다.

지난 6월말 현재 금융권의 부실채권은 금감위기준으로도 자그마치 1백50조
원으로 97년 우리나라 GNP의 40%에 육박하는 규모다.

이렇게 늘어난 부실채권은 금융 경색과 은행 경쟁력 약화의 주범으로 작용
해 왔다.

성업공사는 이미 지난 9월말까지 총 39조원 규모의 부실채권을 금융권으로
부터 매입했다.

내년 상반기까지 약 60조원의 부실채권을 추가로 매입할 계획이지만 부실채
권 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는 자금이다.

성업공사의 역할은 단지 은행의 부실채권을 매입해주는 것이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매입한 부실채권을 얼마나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재매각해
원금을 회수하느냐 하는데 있다.

부실채권의 재매각이 원활하지 않으면 성업공사는 은행권의 부실을 한데 모
은 공룡 부실이 될 뿐이다.

미국도 지난 80년대 후반 저축대부조합의 부실 때문에 엄청난 신용 위기를
겪은 적이 있다.

이때 부실 금융기관 정리의 임무를 맡고 탄생한 곳이 바로 정리신탁공사(RT
C)다.

RTC는 신속성과 효율성의 원칙 하에 7백47개에 달하는 부실 금융기관을
정리함으로써 금융 위기를 극복해 미국 금융산업이 지금의 경쟁력을 갖추는
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성업공사는 미국의 경우와는 달리 효율적인 기능을 못하
고 있다.

현재 성업공사가 안고있는 문제점은 다음의 네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성업공사의 역할이 주로 부실채권 처리에 국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금융부실을 정리하는데 있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되고
있다.

즉 우량자산과 부실자산을 통째로 넘겨받은 미국 RTC는 은행의 연고지역
영업권이나 고정자산의 개발 및 매각 등을 통해 적은 비용으로 신속한 정리
가 가능했다.

둘째 성업공사 자체가 부실화될 우려가 있다.

부실자산의 매각도 어려울 뿐만아니라 매각 가치도 크게 하락한 상태이다.

금융시장이 발달하지 않아 자산담보부채권과 같은 신상품의 거래 여건이
형성돼 있지 않다.

자산의 가치평가 체제가 선진화되지 못한 것도 취약점으로 지적된다.

셋째 성업공사의 업무처리 권한과 책임이 불분명해 비효율적 운용의 소지가
많다.

부실자산의 인수.처리 과정에서 성업공사가 수행할 부분과 민간에 위탁할
부분에 대한 범위도 명확하지 않다.

넷째 금융기관 부실 방지를 위한 예방기능이 미흡하다.

미국의 RTC는 FBI와 공조해 부실은행 및 기업의 경영진에 대해 민사 및
형사상 책임을 묻는 것이 가능할 정도의 사후 감독기능을 가졌다.

성업공사는 사후적으로라도 금융기관의 모럴 해저드를 제어할 장치가 없다.

성업공사가 원활한 금융 구조조정을 지원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다음의 네가
지 조건이 보완돼야 한다.

첫째 성업공사의 역할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그에 적합한 조직 체계를 보강
해야 한다.

성업공사의 역할은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가 아니라 금융기관 부실채권의
정리에 있다.

계속 발생하는 부실채권을 적기에 처리해 주는 금융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한국형 부실채권 정리기구는 미국의 RTC와 같은 한시적인 조직보다
는 상시 조직이 바람직하다.

둘째 민간부문 전문인력의 아웃소싱이 필요하다.

성업공사는 부실채권의 인수와 담보 자산의 경매만 담당해야 한다.

회생가능 기업의 운영이나 부동산 개발과 같은 업무는 민간과 공동으로
수행하고, 부실채권의 증권화 역시 전문적인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투자은행
에 위탁해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성업공사 자체의 부실화를 방지할 수 있는 책임경영 및 경영감시체제
를 구축해야 한다.

성업공사의 경영에 민간기업의 능력주의와 성과주의의 개념을 도입해 공기
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경영진에 대한 엄격한 평가제도를 도입해 공기업의
모럴 해저드를 방지해야 한다.

끝으로 금융감독기관과 신용평가 정보의 공조체제가 필요하다.

성업공사가 부실기업이나 부실자산의 실사 및 평가 과정에서 분석한 자료를
금융감독기관에 신속히 피드백 해주어 금융기관의 추가 부실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