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표준을 만드는 기업이 세계시장을 석권한다"

세계 기업들은 지금 자국의 기술을 공적인 세계표준으로 채택키 위해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업계뿐이 아니다.

정부도 지원사격에 적극 나서고 있다.

기술이 앞선 기업도 자사의 기술을 세계표준으로 만들지 못하면 경쟁에서
뒤질 수 밖에 없다는 엄연한 현실 인식에 따른 것.

특히 WTO(세계무역기구)의 출범은 공적인 세계표준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ISO(국제표준화기구)와 IEC(국제전기위원회)에서 채택한 세계표준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1백25개 회원국이 의무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시장에서의 지배력을 무기로 "사실상 표준"을 주도해온 기업들까지 공적인
표준을 놓고 벌이는 주도권 다툼에 뛰어들고 있다.

"올들어 ISO와 IEC 회의에 마이크로소프트 관계자들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국립기술품질원 이은호박사)는 지적은 그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선마이크로시스템즈는 자바를 지난 7월 IEC의 표준규격으로 통과시키는데
성공했다.

이같은 움직임에는 공적인 표준까지 주도할 경우 영원한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특히 자사 기술을 세계표준으로 채택시킬 경우 공개적으로 엄청난 로열티를
챙길 수 있는데다 반독점법에 걸리지 않는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각국의 정부도 자국 기업의 이같은 노력을 뒷받침하는데 적극 나서고 있다.

자국 기업에 유리한 쪽으로 공적표준이 제정되도록 국제표준기구에 영향권
을 행사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를위한 전열정비 차원에서 작년에 여러 부처에 난립해 있던
표준화체제를 국립표준기술원(NIST)으로 일원화했다.

이어 지난 9월엔 국가표준 제정에 처음으로 정부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일본도 공업기술원에 작년 7월 표준기반조정과를 신설하는 등 조직을
확대하고 있다.

반면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우선 정부 조직의 지위는 청(차관급)에서 법령제정권이 없는 원(1급)으로
격하됐다.

국가표준 업무를 총괄해온 공진청이 중기청으로 바뀌면서 국립기술품질원이
업무를 떠안게 된 것.

더욱이 기술품질원의 지위는 중기청 산하이면서 업무는 산업자원부 1개과의
지시를 받는 어정쩡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물론 국내 정부와 기업이 세계표준에 무관심한 것만은 아니다.

지난 5월 국내 학계 주도로 다자간 멀티미디어 통신방법(ECTS)이 ISO및
IEC 표준으로 제정된데 이어 7월엔 삼성전자 등이 개발한 12건의 기술이
MPEG4의 세계표준안에 반영됐다.

하지만 이같은 성과는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ECTS는 한국이 ISO에 가입한후 35년만에 처음으로 주도적으로 제정한
규격.

ISO와 IEC에서 매년 제정되거나 개정되는 세계표준이 1천4백여개에 이르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까지 든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ISO및 IEC의 1천여개 분과위원회중 우리나라가 간사국을 맡은 것은 개별
반도체소자를 다루는 SC47E 단 1개다.

더욱이 기업들은 당장에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표준제정에 소극적이다.

ECTS 제정을 주도한 충남대의 김대영 교수는 "선진기업은 세계표준과
제품개발을 동시에 추진하지만 국내기업은 선진기업의 성공을 보고 제품개발
에 뛰어든다"며 영원한 후발주자의 멍에를 벗으려면 세계표준 제정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따라 내년에 국내에서 대대적으로 열리는 세계표준회의에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내년에 한국에서 개최되는 ISO/IEC 회의는 멀티미디어분야 등 6개로
2백44개국에서 1천3백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