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표준 전쟁에서는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게 마련이다.

세계표준 제정의 성공과 실패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는 얘기다.

일본 기업들은 HD(고선명)TV를 지난 80년대 후반 세계에서 가장 먼저 개발,
이를 통해 88 서울 올림픽방송 등을 시험방송까지 했다.

하지만 일본은 후발주자인 미국의 기술에 의존해야 HDTV를 상용화 할 수
있는 처지로 전락했다.

90년대 들어 미국 주도하에 HDTV의 공적인 세계표준이 제정됐기 때문이다.

기술 우위보다는 세계표준의 장악 여부가 더욱 중요함을 일깨워 주는
사례다.

VTR시장에서 소니를 따돌린 마쓰시타의 승리는 이같은 교훈을 던져주는
고전적인 사례다.

지난 77년 소니는 경쟁사인 마쓰시타의 공동개발 제의를 거절하고 베타맥스
방식의 VTR를 독자개발했다.

소니는 히타치 등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 주문까지 거절할 정도로
자사제품의 성능을 믿고 배짱을 부렸다.

이에 마쓰시타는 기술적으로 뒤진 VHS 방식의 VTR를 내놓고 히타치와
RCA를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였다.

결국 VHS 방식이 사실상의 세계표준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소비자들이 소니의 VTR에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물론이다.

세계표준 전쟁에서의 승리는 무역장벽으로 떠오른 경쟁국의 표준 제정을
저지할때도 거둘수 있다.

유럽연합(EU)이 수입제품에 미터단위 표기를 의무화하는 법령을 추진하자
미국은 시행시기를 당초 2000년에서 2010년으로 연기 시켰다.

미터와 인치단위를 선택해서 표기하고 있는 미국기업으로서는 엄청난
부담이 됐기 때문에 취한 대응조치였다.

한국이 세계표준 전쟁에서 전과를 올린 대표적인 사례로는 엠펙4가 꼽힌다.

지난 7월 아일랜드에서 열린 ISO 회의에서 삼성전자 7건, 현대전자 3건,
LG전자 1건 등 총 12건의 국내기술이 엠펙4 세계 표준안에 반영된 것.

이에따라 21세기에 활성화될 화상전화 디지털TV 등의 기술개발과 관련,
국내기업도 특허료 수입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