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사에 한획을 긋는 기념비적인 행사였다.
울진 원전은 다름아닌 순수 우리기술로 설계 제작한 첫번째 "한국 표준형
원전".
전기가 들어온지 1백년만에, 지난 78년 고리1호기에서 원자력 발전을 처음
시작한지 20년만에 원전기술 홀로서기에 성공한 것이다.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소요되는 부품은 대략 1백만개.
인공위성 제작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원전 골격을 만드는데 투입되는 자재도 엄청나다.
울진3호기를 63빌딩과 비교하면 콘크리트가 11배인 65만입방m, 철근은
19배인 9만t이 들어갔다.
최악의 사태 때도 원자력이 누출되는 일이 없도록 안전조치를 취하다보니
자재가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쏟아부었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다.
울진3호기를 "해방후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꼽는 한전 직원들의 스스럼없는
표현은 이래서 자연스러운지 모른다.
한국형 표준원전 기술은 모방에서 출발했다.
신개발이 아닌 모방과 개량을 통해 우리 것으로 만든 것이다.
한전은 미국 웨스팅하우스에 고리1호기 운영.정비요원을 파견하면서 원전
기술을 접하게 됐다.
원전기술이라면 무조건 베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기술자립 욕구는 원전을 운영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외국업체들은 사소한 부품도 고액을 요구하는 횡포를 부렸다.
정부는 한전 건의를 받아들여 지난 84년 "원전기술자립촉진대책"을 마련
했다.
경수로형 1백만kW급 원전을 표준화시켜 짓는다는 국산화 계획을 수립했다.
또 외국회사와 기술도입계약을 맺어 공동설계 형태로 기술이전을 받는다는
방침도 세웠다.
표준형원전을 짓기로 한데는 같은 원전을 반복 건설하면 공기 및 경비
절감은 물론 운영과정에서 파악된 문제점들을 개선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사업파트너로 선정된 업체는 미국의 CE사(컨버스천 엔지니어링, 현 ABB-CE사
전신).
1백30만kW급인 미국 팔로버디 발전소의 "시스템 80"이 원천기술이다.
한전은 영광 3.4호기 건설때 이 기술을 적용, 노하우를 습득했다.
영광원전이 표준형 원전개발 및 건설의 마지막 참고서였다.
한국 표준형 원전은 그러나 모방을 뛰어넘는 개성을 갖고 있다.
CE타입중에선 세계에서 유일한 1백만kW급이다.
또 동양적인 사고방식을 접목시켰다.
원전의 기기를 동양인 체형에 맞게 개량했고 사무실 색깔등도 동양정서에
어울리게 바꿨다.
근본적으로 원전이 사람에 의해 운영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런 소프트한
개량이 가져다주는 효과는 수치로 계산하기 힘들다.
안전성도 크게 높였다.
미국 드리마일, 소련 체르노빌 등 원전사고 이후 지어진 것이어서 설계에
반영된 안전장치가 훨씬 많다.
울진3호기보다 먼저 지어진 국내 13개 발전소를 운영하면서 습득한 원전
이용효율 제고방안도 대거 반영됐다.
울진3호기 준공으로 국내 원전기술 자립도는 95% 수준으로 높아졌다.
원전기술을 수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한전은 현재 중국 인도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에 기술수출을 타진하고 있다.
한국표준형 원전은 동양인 체형에 맞게 설계됐기 때문에 동남아지역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수 있을 것으로 한전은 보고있다.
한전은 고리 5.6호기 등 한국표준형 원전을 건설하면서 기술수준을 더욱
높여간다는 방침이다.
또 앞으로 1백30만kW급 차세대 한국표준형 원전을 개발한다는 계획도
짜놓고 있다.
한국표준형 원전은 북한에도 진출하게 된다.
북한 신포 금호지구 원전의 건설 주계약자로 한전이 곧 선정될 것이기 때문
이다.
모방을 통해 우리 것으로 만든 원전기술은 남북한 전력사업의 가교역할까지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