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전선(대표 최병철)이 생산하는 선박용 전선은 길이로 월 2천km에
이른다.

단일업체론 세계 최대 규모다.

국내는 물론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 세계 20여개국에 공급되고 있다.

세계시장 점유율은 34%.

극동전선의 성장에는 선박용 전선의 수출이 있었다.

80년대 후반 이후 매출액의 절반 이상을 수출하는 내수탈피 정책을 편게
주효했다.

관납이 상당물량인 일반 전선의 내수시장에 매달려 온 대부분의 중소
전선업체와는 달랐다.

극동전선은 일본 전선업체에 대한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공급으로
선박용 전선의 수출을 시작했다.

"포장에 앉은 먼지를 핑계로 불량 판정을 내릴때는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최병철 사장과 직원들의 마음에는 "극일"을 하겠다는 의지가 싹텄다.

기술력을 쌓은 뒤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일본과 유럽업체를 제치고 중국시장의 60%를 차지하는 최대업체로
떠올랐다.

중국의 17개 조선소에 전선을 공급중이다.

중국인은 친분을 중시한다는것을 간파한 최 사장은 출장갈때마다 겔포스
한상자를 들고 갔다고 한다.

두주불사형으로 술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중국인들과의 술자리가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자신감을 얻은 극동전선은 일본에 재진출했다.

이번엔 독자브랜드로 직접 들어갔다.

극동전선은 일본시장의 15%를 차지하면서 업계 판도를 바꿔 놓았다.

일본의 대기업 계열 전선사가 주도해온 선박용 전선시장이 전문업체
중심으로 바뀌게 된 것.

국내 중소 전선업계가 내수침체로 연쇄부도의 회오리에 휘말린 상태지만
극동전선은 예외다.

이 회사의 올해 매출액은 작년실적(7백60억원)보다 18% 증가한 9백억원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중 절반 이상이 선박용 전선을 중심으로 한 수출이다.

선박용 전선을 주력사업으로 키운 것 자체도 이 회사를 불황에 강한
기업으로 키워 놓았다는 분석이다.

지난 69년 설립된 이 회사는 80년대 초반 선박용 전선시장에 뛰어들었다.

수요가 공급보다 많던 전선시장에 안주할수도 있었지만 미래를 생각했던
것.

특히 선박용 전선은 신규분야인데다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되면서
대기업의 견제를 받지 않고도 주도적으로 시장개척을 할수 있었다.

최 사장은 "70% 이상을 대기업이 장악한 일반 전선시장에서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키우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중기고유업종은 필요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극동전선도 선박용 전선시장 진출에 따른 혹독한 시련을 한차례
맞게된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반까지 조선경기 위축으로 덤핑수주가 성행하고
이에따른 가격인하 압력을 받으면서 어려움을 겪게된 것.

이 시장에 진출했던 유일한 중소기업인 연합전선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진로그룹으로 넘어갔다.

최 사장은 몸으로 부딪치는 기술개발과 노사화합이 위기를 극복케 했다고
회고했다.

진천공장에서 가동중인 2개 생산장비는 극동의 모험심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기술개발 사례다.

15억원짜리 영국제 생산장비 구입을 의뢰받은 이 회사는 3억원에
이 장비를 개발하는 기염을 토했다.

극동전선은 작년부터 LAN(구역내통신망)용 전선사업에도 나섰다.

선박용 전선처럼 틈새품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AMP Belden 등 외국업체들이 고가에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 있었다.

미국 UL마크를 획득할 만큼의 고품질 LAN용 전선을 개발한데 이어
최근에는 세계일류급인 카테고리6급 전선까지 개발했다.

또 이 사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LAN용 접속자재를 생산하는 미국의
허벨과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합작법인을 세워 폴리머 애저등을 생산할 계획도 갖고 있다.

"조선 강국의 위치에 걸맞게 선박용 전선에도 한국의 표준이 세계표준으로
채택되도록 힘쓰겠습니다"

최 사장은 이를위해 성균관대 및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과 협력,
신기술 확보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