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뜨고 있는 얼굴이 낯설어요"

테크밸리를 이끌어가는 김성헌 사장과 강애리 실장은 가깝고도 먼 부부다.

결혼한지 6년이 지나도록 서로 깨어있는 얼굴을 본 시간이 별로 없다.

김 사장은 기술개발이나 제품보완에 들어가면 거의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성격상 야간에 주의력이 생기는 그는 밤샘작업에 매달린다.

숙식은 거의 회사에서 해결한다.

밥먹을 때도 노트와 메모지를 가지고 다니면서 생각나는 것을 기록한다.

이 메모들은 연구개발의 기초자료로 긴요하게 사용된다.

그가 어쩌다 집에 들러도 새벽녘에 왔다가 오후엔 연구실로 직행한다.

강 실장은 이와는 정반대다.

영업 마케팅 홍보 등 회사살림은 모두 그녀의 몫이다.

그녀의 업무는 주로 낮에 이뤄진다.

남편이 기술개발에 몰두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다보니 얼굴을 보더라도 서로 잠든 모습을 확인하는게 전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철저한 역할분담으로 회사가 제자리를 잡고 있다.

이 회사는 한때 전문경영인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경영진은 무리하게 대기업형 체제와 경영방식을 도입하려다
회사를 곤경에 빠뜨렸다.

그래서 벤처기업에 걸맞는 슬림경영을 위해 지난 5월 전무 이사 부장 등
중간 간부를 모두 내보냈다.

지금도 중간 간부는 두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셈이다.

대신 직원들은 과장급이하의 평사원으로 주요 업무외엔 간섭을 받지 않는다.

두 사람은 누구보다 사원들을 믿고 고맙게 생각한다.

어렵고 힘들때 꿋꿋하게 참고 회사의 파수꾼으로 남아줬기 때문이다.

앞으로 회사가 일정한 궤도에 올라서면 이들에게 주식무상양여 등을 통해
꼭 보답하겠다는게 강 사장 부부의 다짐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