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창간 34돌] 기업 : 고객만족 .. '가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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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대표 배삼준) 무스탕은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겨울 방한
재킷이다.
내수시장에서 17%이상을 점유하는 최고 브랜드다.
비수기때 가격을 낮춰 공급하는 차별화 전략덕에 "무스탕=겨울의류"라는
공식을 깬 의류이기도 하다.
연중내내 팔리고 있다는 얘기다.
불황속에서도 최고브랜드의 위치에 흔들림이 없다.
배삼준 사장은 "영업전략이 성공했다"고 말했다.
모든 장사는 물건이 좋고 값이 싸야 많이 팔린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무스탕 역시 이같은 원칙을 지켰다.
전략은 유통마진을 축소한 것.
가우디도 초기에는 백화점을 이용했다.
그러나 수수료 30%를 내고 장사하기란 쉽지 않았다.
직영점을 운영키로 했다.
가우디의 직영점은 번화가가 아닌곳에 설치된다는게 특징이다.
임대료가 싸기 때문이다.
배 사장은 무스탕의 가격이 싸고 품질이 좋으면 고객이 알아서 찾아올텐테
굳히 번화가로 나갈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직영점은 지난 94년 서울 교대역에 설치한 1호를 시작으로 작년에는
26개까지 늘렸다가 지금은 불황탓에 15개로 줄인 상태다.
원피 구매단계에서도 가격거품을 뺐다.
가우디는 종합상사를 거치지 않고 배 사장이 스페인을 왕래하며 원피를
직접 고른다.
유통단계 축소에 따른 원가절감은 물론 배 사장의 오랜경험을 바탕으로
양질의 원피를 조달할 수 있었다.
저가의 고품질 무스탕을 내놓을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전략이 시장에서 먹혀 들어갔다.
1년 3백65일 AS(사후서비스)를 철저히 하고있는 것도 소비자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게 된 배경이다.
무스탕 한품목으로 올린 매출이 94년 36억원에서 96년 3백60억원, 97년
4백억원으로 급성장하게 된 것.
가우디는 작년부터 값은 다소 비싸더라도 고급원피를 쓰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가우디를 입는 고객이 80여만명으로 소비층이 두텁기때문에 매출을
늘리기보다는 소비자 만족을 중시하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는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배 사장은 도산업체가 늘면서 땡처리된 무스탕을 정품 판매인 것처럼
속여 원가에도 못미치는 가격에 공급하는 일부 업체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가우디는 정품판매만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라고 덧붙였다.
진실은 통한다는 그의 신념 때문이다.
배 사장은 불황을 그리 겁내지 않는다.
오랫동안 사업을 해오면서 그보다 더 험한꼴도 보아온 터다.
경기공전 2년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그는 국세청 세무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싱크대용 목대를 만드는 공장을 2년간 운영하다 빈털터리가 된 그는
월부책장사 등 2년간 외판원 생활을 하게 됐다.
그러나 상계동 모피공장을 찾게된게 인연이 돼 5만원을 갖고 84년에
예진어패럴을 세워 모피장사를 시작했다.
배 사장은 모 의류업체가 납품대금을 주지 않아 직원들에게 월급줄 돈이
없어 납품업체에서 살다시피해서 결제대금을 받은적이 있다며 신용은
목숨처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91년에는 거래업체에서 받은 어음 11억원어치가 부도나는 바람에 또 다시
빈털터리가 됐다.
그렇다고 좌절하기엔 공들인 노력이 아까웠다.
95년 가우디를 세우며 유통마진을 대폭 없애는 전략을 구사, 재기에 성공한
것.
배 사장은 불황으로 매출이 절반정도 줄긴 했지만 자금난은 없다고 말했다.
이월 원자재가 많아 원자재 지급비용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가우디는 해외시장에서 불황의 돌파구를 찾고있다.
모스크바에 이어 베이징에 매장을 내는 등 본격적인 수출체제 가동에
나섰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2일자 ).
재킷이다.
내수시장에서 17%이상을 점유하는 최고 브랜드다.
비수기때 가격을 낮춰 공급하는 차별화 전략덕에 "무스탕=겨울의류"라는
공식을 깬 의류이기도 하다.
연중내내 팔리고 있다는 얘기다.
불황속에서도 최고브랜드의 위치에 흔들림이 없다.
배삼준 사장은 "영업전략이 성공했다"고 말했다.
모든 장사는 물건이 좋고 값이 싸야 많이 팔린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무스탕 역시 이같은 원칙을 지켰다.
전략은 유통마진을 축소한 것.
가우디도 초기에는 백화점을 이용했다.
그러나 수수료 30%를 내고 장사하기란 쉽지 않았다.
직영점을 운영키로 했다.
가우디의 직영점은 번화가가 아닌곳에 설치된다는게 특징이다.
임대료가 싸기 때문이다.
배 사장은 무스탕의 가격이 싸고 품질이 좋으면 고객이 알아서 찾아올텐테
굳히 번화가로 나갈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직영점은 지난 94년 서울 교대역에 설치한 1호를 시작으로 작년에는
26개까지 늘렸다가 지금은 불황탓에 15개로 줄인 상태다.
원피 구매단계에서도 가격거품을 뺐다.
가우디는 종합상사를 거치지 않고 배 사장이 스페인을 왕래하며 원피를
직접 고른다.
유통단계 축소에 따른 원가절감은 물론 배 사장의 오랜경험을 바탕으로
양질의 원피를 조달할 수 있었다.
저가의 고품질 무스탕을 내놓을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전략이 시장에서 먹혀 들어갔다.
1년 3백65일 AS(사후서비스)를 철저히 하고있는 것도 소비자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게 된 배경이다.
무스탕 한품목으로 올린 매출이 94년 36억원에서 96년 3백60억원, 97년
4백억원으로 급성장하게 된 것.
가우디는 작년부터 값은 다소 비싸더라도 고급원피를 쓰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가우디를 입는 고객이 80여만명으로 소비층이 두텁기때문에 매출을
늘리기보다는 소비자 만족을 중시하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는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배 사장은 도산업체가 늘면서 땡처리된 무스탕을 정품 판매인 것처럼
속여 원가에도 못미치는 가격에 공급하는 일부 업체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가우디는 정품판매만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라고 덧붙였다.
진실은 통한다는 그의 신념 때문이다.
배 사장은 불황을 그리 겁내지 않는다.
오랫동안 사업을 해오면서 그보다 더 험한꼴도 보아온 터다.
경기공전 2년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그는 국세청 세무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싱크대용 목대를 만드는 공장을 2년간 운영하다 빈털터리가 된 그는
월부책장사 등 2년간 외판원 생활을 하게 됐다.
그러나 상계동 모피공장을 찾게된게 인연이 돼 5만원을 갖고 84년에
예진어패럴을 세워 모피장사를 시작했다.
배 사장은 모 의류업체가 납품대금을 주지 않아 직원들에게 월급줄 돈이
없어 납품업체에서 살다시피해서 결제대금을 받은적이 있다며 신용은
목숨처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91년에는 거래업체에서 받은 어음 11억원어치가 부도나는 바람에 또 다시
빈털터리가 됐다.
그렇다고 좌절하기엔 공들인 노력이 아까웠다.
95년 가우디를 세우며 유통마진을 대폭 없애는 전략을 구사, 재기에 성공한
것.
배 사장은 불황으로 매출이 절반정도 줄긴 했지만 자금난은 없다고 말했다.
이월 원자재가 많아 원자재 지급비용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가우디는 해외시장에서 불황의 돌파구를 찾고있다.
모스크바에 이어 베이징에 매장을 내는 등 본격적인 수출체제 가동에
나섰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