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큰 입(big mouth)"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아시아 외환위기는 1천명에 불과한 환투기
세력들에 의해 초래됐으며 이들 때문에 60억 지구촌 사람들이 경제적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제신문에 특별기고한 글에서 마하티르 총리는 "미국 등 서구
자본주의국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아시아의 경제시스템이나, 정부의
부도덕성,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s)가 위기의 원인은 아니었다"며
"이들이 강요하고 있는 자유시장경제체제도 절대의 선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마하티르는 기고문에서 말레이시아가 "이단자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설명했다.

< 정리=김수찬 기자 ks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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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적 가치''는 위기 원인 아니다 ]]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한지 1년이 지났다.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외환위기 초기 몇개월 정도만 지나면 상황이 호전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솔직히 태국만의 문제로만 여겼었다.

그러나 1년여가 지난 지금에도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금융위기는 오히려 러시아를 거쳐 중남미지역으로 확산돼 가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달러 기준으로 올해 전세계 산업생산은 지난해 비해 2~3%
감소할 전망이다.

세계적 디플레에 대한 우려도 그 어느때보다 높다.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IBRD) 총회와 앞서 열린 선진7개국(G7)
재무장관 회담에서도 세계경제위기를 해소할 뾰족한 방안을 찾는데 실패했다.

아시아는 물론 전세계 국민들이 경제위기의 두려움에 떨고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에도 웃음을 짓고 있는 무리들이 있다.

다름아닌 국제투기꾼들이다.

전세계 60억인구가 고통을 받고 있는데도 1천명에 불과한 이들 환투기꾼들은
자유시장체제를 교묘히 활용해 배를 불리고 있다.

과연 외환위기는 왜 일어났을까.

외환위기 당사국들의 구조적인 경제시스템과 관행의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국제적인 비난은 정당한 것인가.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로 상징되는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가
주범이었다는 지적은 어떤가.

그 어느 것도 맞지 않다.

외환위기 이전 동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었으며 고도성장을
지속한 경제권이었다.

이들 국가들이 누렸던 고도성장과 눈부신 경제발전은 신기루가 아닌 분명한
현실이었다.

무엇보다 낮은 실업률과 높은 성장률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가난한 농업경제국가에서 고도산업국가로 변모한 사실도 좋은 증거다.

덕분에 세계시장을 누비는 고품질의 하이테크 제품을 생산하는 기술과
노하우도 축적했다.

자유시장주의자들은 분명히 명심해야 한다.

동아시아국가들이 우연에 의해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 나라의 정부는 경제성장을 돕기 위한 환경을 조성해 왔으며 나름대로
의 노력도 기울여 왔다.

그래서 서방국가들이 매도하는 것과는 달리 아시아의 정부가 추구해온
경제시스템은 분명 "필요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동안 경제개발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일부 정부는 어느정도 부패했다는 사실을 굳이 부인하진 않겠다.

그러나 아시아국들의 모든 정부와 경제시스템이 완전히 부패했다는거나
비효율적이었다는 주장은 인정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미국 유럽 등 이른바 선진국 정부는 부정부패와 정실자본주의로
부터 완전히 자유로왔는지를 반문하고 싶다.

이들 나라 역시 그다지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최근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사태"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파산직전에 몰린 미국의 이 헤지펀드에
긴급구제자금을 지원하도록 미국 유럽 등 관련 은행들에 "명령"했다.

이처럼 LTCM을 발벗고 나서서 구제한 것은 이들 은행들이 펀드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눈에 이는 분명 정실자본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비춰 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돈(예금)을 자신들을 위해 남용하는 것은 이들이 비난해온
정실자본주의와 별로 다를게 없다.

오히려 더 나쁘다.

분명 아시아적 가치는 서구적 가치와 다르다.

이는 결코 아시아적 가치가 서구적 가치에 비해 못하다거나 하위개념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높은 저축률, 직장에 대한 충성심, 평생직장제도 등으로 상징되는 아시아적
가치가 성장의 원동력이었지 결코 위기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

같은 맥락에서 아시아 기업들의 외채에 의존한 경영관행이 무조건 비난받아
마땅한가.

그렇지 않다.

외채에 의존한 경영관행도 이들이 마련한 외채상환계획 등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 경제시스템하에서는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문제는 이들의 외채상환계획 등을 일시에 혼란으로 빠트린 환투기꾼들의
투기적 행태가 오히려 원흉이었음을 인식해야 한다.

IMF의 천편일률적인 처방전도 문제였다.

고금리.초긴축 처방전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IMF가 경제회복을 위해 필수적이었다며 취한 조치는 회복은 오히려 외채
규모를 키웠으며 기업들의 연쇄부도를 부추겨 위기를 걷잡을 수 없는 방향
으로 몰고 갔다.

IMF도 최근 이같은 처방전이 "약간" 잘못됐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외환위기국과 그 국민들이 겪은 고통은 결코 "약간"이 아니었다.

그동안 쌓아올린 수십조달러의 국부와 경제적 능력이 일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국제적인 투기세력과 IMF의 사소한 실수때문에 오늘날 이 지역이 처한
현실은 어떤가.

이들 국가와 국민들은 한결같이 위기의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다.

그러나 자유시장체제 옹호자들은 현재의 경제위기상황이 번영을 누렸던
과거보다 나을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오늘날 이 지역의 경제상황이 만신창이가 된 것은 보다 나은 경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이므로 장기적으로는 경제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이 강조하고 있는 "창조적 파괴"는 전혀 창조적이지 못했다.

창조적 파괴는 단지 "파괴"를 정당화하기 위한 궤변에 불과하다.

이들의 주장을 국민들에게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외환위기로 일자리를 잃은 수백만명의 실업자들이 과연 이 말로 위안을
삼을 수 있을까.

줄줄이 무너진 기업과 금융기관 직원들이 "현재의 불행은 국가나 국민들의
먼 장래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라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게 된 사람에게 "당신은 소중한 종족(호랑이)을 먹여
살리기 위해 값진 희생을 치르니 억울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단언하건데 국제 투기꾼들이 통화나 주식시장을 공략하지 않았다면 아시아
위기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이들의 투기적 공격이 없었는데도 이같은 위기가 발생했었다면 외환
위기는 이미 오래전에 일어났어야 옳은 일이다.

지난 40년간 거의 비슷한 정권이 똑같은 경제시스템을 갖고 이들 나라를
이끌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시스템하에서도 이들 나라들은 지난 40년간 경제위기는 커녕 오히려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왔었다.

이런 정부가 외환위기의 주범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제 투기세력들은 이들 국가들에 "본때"를 보여 줬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찬사를 받고 있다.

아시아에 서방의 경제논리와 관행을 받아들이도록 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인간사회가 만든 모든 시스템은 결국 인류에게 행복과 안녕을 가져다 주기
위한 것이다.

지금까지 인류사회에 존재해온 부족제도 봉건제도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 각종 정치.경제시스템과 이념이 탄생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시스템의 존재이유를 종종 망각한다.

일부 극단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추구하고 있는 시스템과 이념이 최고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다른 시스템을 무참히 짓밟았다.

수백만명의 소중한 인명이 이같은 싸움에서 희생되고 있다.

수많은 인간들이 같은 이유로 고문을 당하고 있다.

기아에 허덕이기도 한다.

그동안 누구도 이처럼 무의미한 싸움을 감히 종식시키려 하지 않았다.

오늘날 전세계 국가들은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체제가 최선의 시스템이라고
강요당하고 있다.

국제화도 피할수 없는 선택이라고 설득당하고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시스템을 채택하든지 아니면 이단자로 낙인 찍혀 벌을
받던지 두가지 선택만이 앞에 놓여 있다.

아주 사소한 이탈과 변형도 용납하지 않고 있다.

무분별한 자유시장논리가 아시아지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 붕괴까지 위협
하고 있다는 사실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들에겐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시스템을 제대로 따르고 있느냐는 것이다.

오래전 기독교도들이 종교재판을 열어 비기독교인과 회교도 그리고
유대교인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한 적이 있었다.

이들 기독교인들이 과거 행위가 비기독교적이었다고 반성하는데 무려
3백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수많은 사상가들이 자신의 학설과 논리가 잘못됐음을 인정하는데 짧게는
수십년 길게는 수백년이 걸리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자유시장경제 시스템이 절대로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는데는
또 얼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우리도 3백여년을 기다려야 하는가.

이미 이로 인한 경제적, 정신적 피해는 막대하다.

말레이시아는 더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말레이시아는 이단자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다.

만일 국제사회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말레이시아가 변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