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옥자 < 서울대 교수. 한국사 >

지난 여름 초입의 어느 날로 기억된다.

생면부지의 인물로부터 한번 만나고 싶다는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부채 전시회 관계로 꼭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였다.

사실 잘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항상 긴장을 몰고 오기 때문에 그리
탐탁한 일은 아니다.

더구나 필자같이 연구에 침잠해야하는 학자들은 안정감이 필수이므로
외적인 일에서 가급적이면 초연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만남을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은 그 목소리에 진지성과
힘이 묻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쳐들어왔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필자에게는 다소 불편한 만남이었지만
대화를 하는 도중 그의 열정과 신념에 나도 모르게 이끌려 들었다.

그가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를 오늘에 맞게 재창조하여 이 시대의 민족
문화를 풍요롭게 하려는 문화운동의 기수임을 확인하면서 든든한 길동무를
만난 듯 싶었다.

그는 전통문화용품 중에서도 예술성과 실용성을 겸비하고 있는 부채예술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었다.

전통시대에는 여름이 다가오는 단오절 즈음에 부채를 선물로 주고받았다.

부채 중에서도 합죽선은 전통시대 지성인 선비들의 애용품이었다.

우리나라의 합죽선은 동양 삼국 중에서도 고품질을 자랑하였다.

부채의 종이가 질겨 생명이 길고 부챗살은 대나무의 양면을 서로 합하여
합죽으로 만들었기에 튼튼하고 펼쳐진 각도가 1백80도나 되어 바람의 양이
훨씬 많다.

시 서 화를 교양필수로 한 선비들은 이 합죽선에 시 한 수를 붓글씨로 써
넣거나 그림 한 폭을 그려 넣어 품격있고 정감어린 선물을 하였던 것이다.

선풍기와 에어컨에 밀려 부채가 사라져 가고 있는 이 시대에 아직도 천직인
양 묵묵히 그 기능을 잇고 있는 부채명장(전주의 이기동 옹)의 작업과 현대
한국화단의 다양한 그림을 연결하여 예술부채를 만들어 일반에게 전시하는
것이 그의 기획의도이고 이미 한차례 전시회를 통하여 성공의 가능성을 확인
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힘입어 다시 부채그림 문화 예술품 전시회를 기획하니 격려사를 부탁
한다는 것이 그의 요청이었다.

나는 기꺼이 격려사를 써주고 전시회에도 가 화가들과 교환하였다.

전시된 부채들은 한지에 여러 화가들이 그림을 그려서 부채장에게 보내면
이미 만들어 놓은 부챗살에 붙여 완성하는 공정을 거쳤는데 한정된 공간에
자신의 그림세계를 펼쳐 보여야하는 화가들의 고충도 컸지만, 부채에 붙이는
종이 하나 하나가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들이 공들여 그린 작품이므로 파지를
용납하지 않는 긴장된 작업을 한 부채명장의 기능이 놀라웠다.

먹으로만 그린 전통적인 그림이 있는가 하면 화려한 색채를 구사한 꽃 그림
을 비롯하여 동화의 세계를 표현한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그림과 추사 김정희
의 세한도를 연상시키는 고즈넉한 풍경화를 파스텔조로 그린 그림도 있었다.

현대 한국화와 전통공예의 성공적인 만남을 확인하면서 경제난국에도 불구
하고 우리의 앞날이 어둡지만은 않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이 전시회는 다시 바다 건너 워싱턴의 한국문화원에서 건국 50주년 기념전
으로 성공을 거두고 프랑스 영국 일본 전시까지 초청받았다 한다.

그야말로 한국의 전통문화와 현대문화가 합작하여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문화사절의 역할을 톡톡히 할 전망이다.

그러나 그 소식에 접한 필자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였다.

그 일을 벌인 사람이 자신이 살던 집까지 팔아야 할 정도로 국가적 지원
이나 사회적 관심이 부족하였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리고 합죽선 기능이
제대로 전수되고 있는지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은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니다.

아직 명맥을 잇고 있는 전통공예 등의 기능보유자를 국가적으로 육성하고
사회 저변에서 자생적인 힘으로 솟아나고 있는 이러한 문화운동을 적극 발굴
하여 지원함으로써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장치를 마련
하여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