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위기의 발생원인으로 세가지 학설이 제기되고 있다.

첫번째 학설로는 그동안 아시아산업발전으로 위협을 느껴오던 서구금융계와
산업계, 그리고 선진국 주도의 일부 국제기구가 아시아은행과 기업의 자산
가치를 하락시켜 싼 가격으로 개도국산업을 점유하려 한다는 "음모설"이다.

그들은 국제 단기자본시장에 대한 규제를 통해 투기적 공격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있는 중국 인도 베트남 등을 좋은 본보기로 삼고 있다.

이번에 당한 나라들은 대부분 선진국 자본을 활용해 빨리 경제도약을
이루려던 경우라는 점에서 일부 설득력이 있다.

말레이시아정부가 갖는 시각이다.

두번째 학설은 아시아위기의 원인을 두가지 측면에서 지적한다.

첫째 원인은 너무나 "빨리 많은 부분에서 개방화"를 진전시킴에 따라
아시아 경제기적의 몰락을 초래하게 됐다는 것이다.

금융기관에 대한 적절하고 전반적인 감독과 규제가 없는 상태에서 80년대
후반에 시작된 금융시장 자유화정책은 90년대에 금융부문의 과도한 규모팽창
과 사업성이 없는 산업부문에 대한 과잉투자를 초래하게 됐다는 것이다.

두번째 원인은 80년대 후반 이후 "그릇된 민주주의"와 연관돼 거시경제와
미시적 측면에서 도덕적 권위를 가진 적절한 통제가 부족해 불안정성이
확대되고 불확실성이 높아졌으며 국제경쟁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세번째 학설은 이상의 두 학설과는 상당히 다른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아시아의 경제개발 모델"의 주요한 부분, 특히 통제적인 산업정책,
연고자본주의, 구시대적인 독재주의 등이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
하고 있다.

그들은 부적절한 정보공개로 인한 정보상의 격차로 대출과 투자가 분에
넘치게 이루어지게 됐다고 말한다.

그들은 IMF의 정책패키지에 따른 구조조정방식에 따라 경험이 풍부하고
투자기법이 뛰어난 외국인들에게 국내 부실금융기관들과 기업의 소유권이
이전된다면 과잉투자의 위험을 줄일 수 있고 경쟁에 따른 사회적인 효율성도
제고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한국정책당국자들이 갖는 시각이다.

하지만 러시아 브라질 등과 같이 소위 아시아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은
국가들에서 발생되고 있는 동일한 위기현상들을 이 학설은 설명하지 못한다.

그들 나라는 재벌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위기를 한국재벌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근거로서는 설득력이 더욱 부족하다.

어찌됐든 아시아경제위기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 속성도 변천하고 있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외환부족형태로 출발해 그동안 활발한 경제활동을 영위
했던 경제주체들의 급증하는 채무상환 부담으로 심각한 신용경색 현상이
발생하게 되고, 피땀흘려 축적해 둔 산업기반이 붕괴되고 있다.

경제의 악순환외에도 사회안전망 미흡에 따라 발생되는 대량실업으로 사회가
극도로 불안해질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위기의 심각성을 기준으로 볼 때 세번째 학설에 입각해 정책대응을 하고
있는 국가일수록 타격이 심한게 현실이다.

다른 학설의 입장에서 볼때는 IMF뿐 아니라 해당국 정부의 잘못으로 불필요
한 기업도산과 실업증대를 가져오고, 장기적으론 외국산업계에 의한 종속체제
를 만들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어떤 입장을 취하든 아시아국가는 심지어 세계적 공황하에서도 수출을 증대
시킬 수 있는 신뢰성 있는 정책수단(금융시스템의 조기안정)을 반드시 강구
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위기극복 이후에 또 다른 국제단기자본의 공격에 노출될
가능성은 더욱 커지는 것이다.

그만큼 실물경제가 튼튼해지고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후환이 없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방식은 관치금융범위를 키우면서 은행에 의한
재벌의 종속을 강요하고 있다.

사회기초자본투자와 실업구제사업 등 국내수요창출도 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될 전망이다.

시장경제는 심각한 도전을 받는다.

그렇다면 첫번째와 두번째의 학설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첫번째 학설은 국가이익챙기기 차원의 경제외교력을 강조하는 것이고,
두번째 학설은 우리사회의 문제해결능력을 감안할 때 개혁대상을 너무 넓게
잡는 정치적 접근 대신 실속위주의 기능적 접근을 강조하는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