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와 고고학자 미술가 조각가 설치예술가 등을 하나로 합하면
무엇이 될까.

정답은 문화예술품 복제전문가이다.

그야말로 1인 5역을 수행해야 하는게 복제전문가다.

그만큼 복제전문가는 어느 직업보다도 다방면에 걸쳐 만능이 돼야 한다.

삼국시대의 금동불상을 복제한다고 하자.

복제전문가는 우선 그 시대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흐름은 물론 당시의
불상 제조기술까지 훤히 꿰뚫고 있어야 한다.

요컨대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가 불상을 빚고 있는 장인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삼덕공사의 송일석(40) 이사.

요즘같은 편리 제일주의 시대에 전래되어 오는 전통기법을 고집스레
고수하면서 복제전문가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특히 가장 고난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국보급 문화유적만을 주로
복제하고 있는 외곬이다.

그의 대표적인 복제품으로는 조선시대의 혼천시계를 비롯 휴대용 앙부일구,
지구의, 경주 나원리 금동불상 등이 있다.

그는 "박물관 박사"로도 통한다.

대한민국에서 그만큼 박물관을 자주 찾는 이도 드물다.

전국 2백여 박물관 중 그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거의 없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한달에 무려 10여곳 이상을 찾는다.

어느 박물관에 무엇이 있고 각 박물관의 특징이 어떻다는 것을 손바닥 보듯
알고 있을 정도다.

이 모든 노력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기 위한 끊임없는 몸부림
이다.

그는 그 시대에 사용한 원재질과 공법을 그대로 재현해 문화유적을 복제
하는 사람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합성수지로 만든 복제품과 그 당시와 똑같은 재료를 사용한 복제품을
비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비교해서도 안됩니다"

합성수지 등을 이용, 손쉽게 복제하는 방법이 만연된 현 풍토에서 찾기
드문 장인정신이다.

그러다 보니 제조공법을 파악하기도 힘들지만 원재료를 구하거나 만드는
작업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얼마전 국보 문화재인 조선시대 혼천시계를 복제할 때의 일이다.

다른 원재료는 다 구했는데 꼭 들어가야 할 수백년 된 목재 재질을 찾을 수
없었다.

생각다 못해 고가만을 철거하는 업체들을 전국적으로 수소문한 끝에 겨우
오래된 목재를 구했다고 한다.

이처럼 복제작업 과정 하나 하나가 쉬운 일이 없다.

보통 분야별 복제 전문가 5~6명이 2개월에서 길게는 1년가량 매달려야
복제품 하나가 탄생한다.

문화 예술품이 흔치 않듯이 복제전문가 또한 귀한 존재다.

국내에서 불과 30~40명을 헤아릴 정도다.

그나마 얼마전까지 열 손가락도 꼽지 못했던 데 비하면 크게 늘어난 숫자다.

이 모든 것은 일제가 수천년을 이어져 내려오던 우리 장인제도의 맥을
끊으면서 비롯된 여파이다.

사라졌던 복제문화가 부활하기는 80년대에 들어서다.

"복제는 반복되지 않습니다"

복제는 기본적으로 문화유적을 반복 재생하는 작업이지만 동일한 문화재를
반복해서 복제하는 일은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새로운 복제 대상을 만날때마다 마치 그 문화유적을 만들 당시의 장인과
독대하고 있는 듯한 경외감을 느낀단다.

박물관을 내집 드나들 듯 하는 것도 선현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10년 경력이지만 지금도 도저히 근접할 수 없는 선조들의 예술성에 때때로
절망감을 느끼기도 한다.

"복제품도 먼 훗날 문화 유물이 된다고 생각하면 작품을 만드는 손끝마다
저절로 혼혈의 정성이 기울여집니다"

아직은 복제전문가를 대하는 사회의 분위기는 썰렁하기만 하지만 그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복제품이 없는 상황을 가정하면 그의 자부심에 쉽게 수긍이 간다.

진품 단 하나 밖에 없다면 극수소의 사람들만이 접할 수 있을 뿐 대중이
가까이 하기란 거의 불가능해서다.

복제전문가는 문화 대중화의 일선에 있어 최첨병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복제분야는 전 세계에 한국문화를 수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외화획득을
할수 있는 대표적 고부가가치 산업입니다"

세계적 수준의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우물안 개구리"로 남아
있는 우리네 현실이 가장 서글프단다.

< 류성 기자 sta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