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경련회장은 2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재계회의에서 기조연설
을 통해 한국의 경제개혁 노력을 설명하고 일본 재계의 협조를 요청했다.

김 회장은 아시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역내 민간
부문의 경제협력 강화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조연설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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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는 개방화 및 자유화가 가속화되면서 "금융과 자본의 국경없는
거래"라는 새로운 경쟁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번 아시아 금융위기에서 보듯 이런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국가나 기업은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다.

아시아 경제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경제 기초가 부실해서라기 보다는
무역과 투자라는 실물의 흐름과 이를 뒷받침해야 할 금융의 흐름이 역전되는
이상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아시아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경제에 내재하고 있는 문제가
아시아를 통해 표출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각도의 분석과 대응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해결 또한 개별국가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역내
국가간 협력과 공동노력이 매우 긴요한 시점이다.

특히 한일간 협력 증진과 리더십 발휘는 양국 경제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통화위기의 소용돌이에 빠진 아시아경제의 조속한 회복, 나아가 세계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할 것이다.

한국이 맞고 있는 경제위기도 직접적인 발단은 금융분야에서 비롯됐다.

한국은 OECD 가입에 따른 개방체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중소금융기관
들에 대해 외환취급을 대폭 허용해 줬다.

외환업무의 경험이 전무하다시피한 이들 금융기관들이 위험분산에 대한
고려나 국제 금융여건 변화에 개의치 않고 외화자금을 운용한 것이 동남아
외환위기와 맞물리게 되자 갑작스럽게 차질을 빚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기업의 경우도, 과잉투자 등으로 경제위기를 초래한데 대한 책임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IMF 관리체제 이후 한국 경제는 새 정부의 올바른 방향 설정과 일본을
비롯한 선진 각국의 우호적 협력에 힘입어 단기외채가 중장기외채로 전환될
수 있었고, 두번에 걸친 외평채 발행도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은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뼈를 깎는 각오로 개혁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는 규제 완화 등 제도 개혁을 통해 국제기준에 부합되는 자유로운
시장경제 체제 마련에 진력하고 있으며, 민간기업들 역시 강력한 구조조정
작업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이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런 개혁과정을 통해 한국은 투자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나라로
변모될 것이다.

이런 개혁작업과 병행해 한국은 현재의 어려움을 조기에 극복하고 세계
경제의 건실한 협력 파트너로 복귀하기 위해 수출확대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활발한 기업설비투자를 통해 1조달러를 상회하는 훌륭한
생산설비를 갖추고 있으나 그 가동률은 6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 상태가 지속될 경우 투자비에 대한 회수는 물론, 투자비에 대한 금리
부담이 가중되어 기업활동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기업의 도산->실업증가->내수위축->생산활동 감소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막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수출증대가 불가피하다.

이에 대해 한국경제가 다시 과거의 수출지향적 체제로 회귀하지 않을까
하는 점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이 수출로 얻는 외화는 상당부분 외국으로부터의 원자재
구입과 기업의 대외채무 상환에 활용돼 궁극적으로 대외교역을 활성화하고
국제금융의 경색현상을 해소하는 데도 반드시 기여할 것이다.

한국이 수출확대를 통해 빠른 시일내에 외채를 상환하고 IMF 관리체제를
벗어나게 되면 내수시장도 다시금 활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일본을 비롯한 한국의 교역상대국에게도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즉 한국의 수출확대 노력은 한국경제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물론 세계경제의
조기정상화를 위한 "WIN-WIN" 전략으로서 이해돼야 한다.

수출확대가 한국경제의 회생을 위한 단기적 처방이라 한다면, 중장기
방안으론 기업자율에 바탕한 강력한 구조조정 작업을 들수 있다.

한국정부와 경제계는 금년초부터 기업경영투명성 제고, 재무구조의 획기적
개선, 핵심사업 역량 강화 등 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대외신인도
제고를 위한 기업구조조정을 강도높게 추진하고 있다.

특히 전경련과 5대 기업집단은 그동안 과잉설비 문제가 제기됐던 반도체
석유화학 정유 항공기 철도차량 선박용엔진 발전설비 등 7개 업종 17개
기업에 대해 <>컨소시움 구성에 의한 신규기업 설립 <>인수.합병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상 초유의 업계자율에 의한 기업구조 조정방안을 마련했다.

이번에 도출된 제1차 기업구조조정 방안은 대상사업의 규모가 5대그룹
제조업 총매출액의 33%에 해당하는 42조원에 달하고 있다.

특히 여기에는 석유화학 등 일본 기업과의 협력이 가능한 분야가 상당부분
포함돼 있다.

일본 기업의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를 바란다.

아울러 지금 양국에서 진행중인 기업 구조조정에 관한 활발한 정보 교환과
실천적 공동노력의 모색을 위해 지난 93년 제10회 한.일 재계회의에서
설립된 "한.일 기업경영간담회"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지금 한.일 양국은 당면한 금융위기를 함께 극복해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동시에 눈앞에 다가 온 다음 세기에 대비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시점에
처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양국뿐 아니라 아시아 발전에도 기여할 민간 차원의 경제
협력에 대해 심도있는 연구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아시아 각국은 문화적 동질성에도 불구하고 경제발전의 형태나 속도 등의
차이로 인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나 유럽연합(EU)과 같은 연합체의
창설이 미뤄져 온게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적 경제 블록화 추세가 심화되고,한 국가의 위기가 역내의
다른 국가로까지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지역내의 긴밀한 교류
협력이 보다 구체화되고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내년에는 미국경제의 성장 둔화가 예상되고 있으며 본격적인 EU
출범이 예정돼 있어 지역간 보호주의 경향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따라서 그간 두터운 우호선린관계를 쌓아온 한.일 양국 기업간의 긴밀한
협조에 바탕한 지역내 협력의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어두운 밤일수록 별은 더욱 빛난다"는 말이 있다.

어려운 시기에 직면해 있는 때일수록 양국 경제계가 상호협력을 강화해서
자국의 경제회복은 물론 아시아 경제 회복에 기여한다면 그 의미와 보람이
더욱 클 것이다.

< 정리=권영설 기자 yskw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