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싸우는 국회와 대형 참사로 세상은 시끄럽고 혼란스럽다.

이래저래 삶은 가파르고 힘겹지만 가을 하늘은 마냥 옥빛깔로 청청하기만
하다.

선배 따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나는 일손을 놓고 강남으로 향했다.

같이 가기로 약속한 친구를 만나러 호텔 커피숍으로 갔다.

뜨겁고 짙은 커피의 갈색향에 잠깐동안의 위안을 느껴본다.

그리고 강남에서도 초호화판인 결혼식장으로 갔다.

아뿔싸! 축의금을 내려고 하는데, 손에 핸드백이 없질 않은가.

눈앞이 아뜩하면서 마구 떨려오기 시작하였다.

호텔 화장실안에 걸어두고 그냥 나온 것이었다.

내 핸드백엔 적잖은 돈이 들어있었다.

부탁받은 몇개의 축의금 봉투랑 세금낼 돈이랑, 그런게 문제가 아니었다.

은행비자카드와 백화점카드가 지갑안에 몽땅 들어있었던 것이다.

불난 듯 화장실로 뛰어가 보았으나, 허사였다.

남의 주민등록증으로 가짜 여권과 신용카드까지 위조한다는 공포감게
휩싸여 도무지 정신을 수습할 수가 없었다.

똑똑한 친구가 은행으로 백화점으로 정지 전화를 해주어서 큰 한숨을
놓고 나서였다.

얼마전 택시속에서 들은 방송이 생각났다.

고국에 다니러온 재미교포가 택시에다 귀중품과 돈이 든 가방을 놓고
내렸는데, 착한 택시기사가 고스란히 돌려주었다는 가슴 뭉클한 얘기였다.

그렇다면 내 핸드백도 ,누군가 호텔측에 맡겼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돈은 말고 주민등록증과 은행카드만이라도 찾을 수 있었으면...

호텔 프런트 데스크로 달려갔다.

여직원이 분실물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더니 여자 핸드백이 있단다고
기다려 보라는 희망의 소리를 하지 않는가.

핸드백을 찾은 나는 정녕 믿을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고 말았다.

비자카드며 백화점카드는 물론,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던 주민등록증이
얌전히 있는 것이었다.

돈지갑도 그대로였다.

아직도 세상엔 착한 사람이 더 많았다.

한자락 꿈을 꾼듯, 돌아오는 내 이마에 청량한 가을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