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4.4분기부터 본원통화(화폐발행액과 지불준비금의
합계)한도를 제시하지 않기로 정부와 합의한 것에 대해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옳지않다. "정부구조개혁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의미한다"
거나 "거시정책에 대한 신탁통치를 벗어난 것을 의미하며 앞으로 경기
활성화대책을 능동적으로 펴나갈 수 있게 됐다"는 식의 해석은 한마디로
지나치다.

지난 3.4분기 정책협의때 IMF와 합의한 연말 본원통화한도는 25조6천억원
이다. 현재 잔액은 20조원을 밑돈다. 굳이 한도를 제시하고 이를 지키도록
강요해야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총유동성도 마찬가지다.
IMF와 합의한 연말 목표치 8백27조원을 80조원이상 하회하고 있는 상황이
므로 계속 목표치를 제시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현재의 금융상황은 돈이 제대로 돌지 않는 신용경색이지 은행에 돈이 없는
금융긴축상황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한국은행이 돈을 풀어도 이것이 기업
대출로 나가지 않고 금융권내부에서만 맴돌다가 한은으로 되돌아오는 형편
이다. IMF가 제시한 총유동성 목표치나 본원통화 한도때문에 빚어지고 있는
상황이 아닌 만큼 그것이 풀렸다고 해서 당장 달라질 것도 이렇다하게 있을
리 없다.

IMF가 본원통화한도 등을 우리 정부의 자율에 맡기기로 한 것은 따지고
보면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재정.금융긴축을 기조로 한 IMF의 아시아국가에
대한 처방은 미국내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비판론이 드높았다. 제프리 삭스
(하버드) 폴 크루그먼(MIT) 등은 재정적자가 없고 물가가 안정돼 있는 한국
등 아시아국가에 대해 성격이 전혀 다른 멕시코 등 남미국가에 썼던 긴축
처방을 되풀이, 경제를 망쳐놓았다고 주장해왔다.

이런저런 이유가 겹쳐 IMF의 긴축요구는 이미 수개월전부터 상당히 퇴색
됐다고 보는 것이 옳다. 경기부양을 위한 대폭적인 재정적자를 내용으로
하는 올해 추경 및 내년 예산이 가능했던 것도 그런 맥락이다.

바로 그런 전후 사정을 따져보면 본원통화 한도자율화가 정부정책에 대한
긍정적 평가의 결과라는 주장은 비논리적이다. 거시정책이나 구조개혁 노력에
잘못이 있었다는 뜻에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본원통화 한도자율화는 이미
지적한 것처럼 IMF가 계속 한도를 제시해야할 필요가 없는 현실적 여건,
그리고 IMF의 입장변화에 따른 자연적인 것일뿐이다.

우리가 구제금융을 전액 상환할 때까지는 이번 합의에 관계없이 IMF가
우리 통화정책에 간여할 수 있는 길은 언제든지 열려있다는 점에서 "거시
정책 신탁통치가 끝났다"는 견해도 옳다고하기 어렵다. 경제가 점차 호전
되고 있는 만큼 자신감을 되찾는 것은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별 의미도
없는 이번 일을 확대해석 자화자찬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