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일동 <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idkoh@kdiux.kdi.re.kr >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제2차 방북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마무리됨에
따라 향후 남북관계 진전에 거는 국민의 기대가 이미 주식시장에 종합주가
지수 상승으로 반영되고 있다.

또 금강산 관광이 가능해졌다는 희망적인 소식은 경제위기로 침체된 사회적
분위기를 개선하는데 일조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밖에 미국과 북한간 관계진전에 남북한 관계개선 속도가 미치지 못할 때
우려되는 대북 공조체제상의 부조화 문제와 이에따른 정부의 외교적 부담이
다소 줄어들었다는 점도 중요한 효과중의 하나다.

오는 18일 금강산 관광호의 역사적 출항은 현대측의 획기적인 발상과
적극적인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지만 남북한 당국의 신축적이고도 유연한
태도가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지난 3월 베이징 차관급 회담 결렬이후 북한의 당국간 접촉회피, 잠수정
침투와 인공위성 발사 등 반복되는 악재에도 불구하고 반사적 대응을
자제하면서 실현 가능한 민간부문 협력을 지원해온 정부의 노력과 인내는
높히 평가받을 만하다.

또 북한측도 정 명예회장의 1차 판문점 통과 합의에서부터 김정일의 현대
방북단 숙소방문을 통한 면담까지 제반과정에서 과거와는 달리 상당한
신축성을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북한측의 태도를 통해 볼 때 이제 공식적인 권력승계를 끝낸 김정일
체제가 내부적으로는 "강성대국"을 내세우지만 현실적 여건상 실용적 노선을
버릴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극도의 경제적 궁핍을 겪어온 북한이 최근 동아시아 외환위기로 또다시
심각한 충격을 받은 상황에서 직접 수입액만도 북한의 전체 식량난을 해결할
만큼 실리가 보장되는 금강산 프로젝트를 외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한편 해외투자 유치를 위해서 북한내부의 안정이 필요한 것이 우리의 솔직한
입장임을 비추어 북한의 벼랑끝 외교가능성을 줄인 점과 무상지원이 아닌
상업적 형태를 취함으로써 북한의 체면유지 기회를 제공한 점 등은 현명한
대응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사업 그 자체는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우선 안보상황에 극히 민감한 관광의 특수성과 일회성 방문에 그치기 쉬운
단순관광 상품의 한계 등 프로젝트 자체가 가지는 지속가능성
(sustainability) 측면의 문제점을 꼽을 수 있다.

또 통일그룹의 관광사업 승인보류와 신변안전 문제로 지체되고 있는
속초~나진간 카페리 사업 등 국내 동종사업에 대한 형평성 뿐만 아니라
대북사업권의 균점 필요성 등 여러가지 미시적 정책 과제를 안고 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북한 내부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고 당국간 직접적인
협의가 결여된 상태에서 추진되는 민간차원의 경협이라는 점이다.

정부의 정경분리 원칙에도 불구하고 거시적 차원에서 볼 때 남북 경제
관계에서 정치적 고려를 배제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특정분야의 진전이 이루어진 이후 다른
분야로 그 파급효과가 확산돼 전체적인 균형발전이 이뤄지지 못할 경우
사업 정체가 불가피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때 이제 북한은 내부적 긴장조성을 위한 당국간
대화회피 전략과 한단계 격상된 남북관계하에서 경제적 실리를 획득하는
방안중 체제를 위해 어느 방향이 유리한지 진지하게 숙고해 볼 단계에 와
있다.

한편 우리 내부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시각이나 대북정책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가 여전히 시급한 문제로 남아 있다.

북한문제와 관련해 우리 사회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실적 이해와 정서적
혹은 감정적 문제들을 고려할 때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 없이는 다음 단계로의
발전은 물론 기존 정책의 일관성 유지도 곤란하기 때문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