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현대 명예회장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간의 면담은 시종 활기찬
분위기속에서 진행됐다.

김 국방위원장은 위원장 취임이후 첫 면담자로 정 명예회장을 선택했으며
면담형식도 자신이 직접 정 명예회장의 숙소인 백화원 초대소로 찾아오는
"파격"을 택했다.

북한측이 현대에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걸 반영한다.

이는 외부 인사와의 만남을 꺼리는 김 국방위원장이 45분간이란 긴 시간을
정 명예회장에게 할애한 대목에서도 드러난다.

화기애애한 면담 분위기는 정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의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 명예회장은 귀환직후 가진 판문점 기자회견에서 김 국방위원장에 대해
"나이가 어린 사람인데 예의를 갖춰 깍듯이 대해줘 무척 고마웠다"고 말했다.

정 회장도 북한에서 사진 촬영때 김 국방위원장이 굳이 상석인 가운데
자리를 정 명예회장에게 양보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백화원 초대소에 직접 온 이유에 대해서도 김 국방위원장은 "정 명예회장이
거동이 불편해서"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이처럼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 국방위원장이 정 명예회장을 직접 만난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정 명예회장의 방북기간중 2002년까지 경제를 재건한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2002년은 김정일이 60회 생일을 맞는 해다.

현재 북한의 경제사정을 감안할때 외부지원이 있어야 가능한 목표다.

이런 관점에서 북한 출신의 성공한 남한 기업인인 정 명예회장은 훌륭한
파트너가 된다.

남한 당국을 배제하고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

관광수입과 종합개발사업을 통해 달러를 확보함으로써 경제난을 극복하자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김 국방위원장이 민간차원의 금강산관광및 경협사업에 이례적으로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는 풀이다.

현대와의 경협사업에 대한 북한내 강경파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조치라는
지적도 있다.

경제개발을 최대한 가속화시켜야 하는 북한 경제관료들로서는 남한측 인사
까지 만나는 김 국방위원장의 태도가 훌륭한 방패막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주영 김정일 두사람의 만남은 남북관계 해빙에 중대한 계기
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

김 국방위원장이 정 명예회장에게 "길을 텄으니 자주 오시라"며 각종
사업에 협조의사를 밝힌 점은 남북경협에 대한 의지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김 국방위원장이 남북 당국간 만남에도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북측이 현대와의 경협을 철저히 "민간급"으로 설명하고 있고 현대측도
정치적인 메시지 전달에 대해서는 전면 부인하고 있다.

< 박기호 기자 khpar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