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마빈 자딘플레밍증권 조사담당이사는 31일 새문명아카데미가
주최하고 한국경제신문 동아일보가 후원한 "한국경제 활로모색 국제토론회"
에서 한국경제는 파탄을 향해 치닫고 있다고 다시한번 경고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한국경제의 위기"라는 주제발표를 한 그는 "한국은
금융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는데다 기업들의 부채의존 체질도 전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한국경제를 위한 최선의 방법은 부실
기업을 신속히 파산시키고 금융기관을 국유화하는 것"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그의 주제발표 내용을 요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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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제위기는 아직 끝이 보이지 않는다.

"Korea"라는 주식회사는 파산을 향해 치닫고 있다.

그런데도 최근 발표되는 한국경제에 대한 예측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한국정부의 정책결정자나 경제학자 외국투자자들까지 이런 낙관론에
젖어있다.

비현실적인 기대와 오해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수출로 위기 탈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오산이다.

환율과 수출의 관계를 따져보면 알 수 있다.

엔화에 대해 원화가치가 떨어지거나 달러에 비해 원화가치가 하락하면
한국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이 높아져 수출이 크게 늘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지난 86년 한햇동안과 92년초부터 93년말까지 엔화에 대한 원화가치는
떨어졌지만 달러기준으로 본 수출액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 기간동안 원화가치는 안정적이었다.

이를 감안할 경우 환율변동이 한국수출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지만
결정적인 변수는 되지 못한다.

환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성장성과 수익성이라는 기준이다.

한국의 수출업체들은 대부분 덤핑을 통해 수출물량을 늘리고 있어 수익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달러기준으로 단위당 수출가격은 지난 95년초부터 하락하기 시작했고
원화기준으로도 하향궤도에 접어들었다.

수출물량이 늘어나면 그만큼 수출액도 늘고 기업수지도 개선돼야 당연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다음으로는 한국기업들의 부채가 거의 감소하지 않았다는데 있다.

기업들의 차입의존 구조는 한국의 경제위기를 불러온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이지만 IMF(국제통화기금)관리체제로 접어든 이후에도 이같은 체질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부채는 줄기는 커녕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양상이다.

한국증권거래소의 통계에 따르면 금융기관을 제외한 상장사의 올상반기
총부채가 지난해말보다 4.4% 늘어나 있다.

총자산에 대한 총부채비율은 53.9%에서 54.4%로 높아졌다는 것이다.

주저앉아버린 설비가동률도 한국제조업체들의 수익성을 저하시키고 있다.

지난 3월이후 설비투자와 건설투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소비재와 자본재에 대한 내수가 회복되지 않은데다 수출수익성도 낮은
탓이다.

낮은 설비가동률은 생산 감소를 불러와 실업증가와 임금하락으로 이어진다.

지금까지는 중소기업의 근로자들이 부도, 정리해고 등으로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앞으로 금융기관의 지원이 끊기거나 정부재원이 바닥나게 되면
그동안 연명해 왔던 구제불능의 재벌들은 속속 무너지게 될 것이다.

최악의 상황은 자나간게 아니라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것이다.

외자유치라는 카드도 여의치 않다.

지난 7월 현재 한국에 대한 외국인의 직접투자규모는 5억4천4백만달러에
불과하다.

노조의 강한 반발, 느슨한 회계기준, 얽키고 설킨 상호지급보증으로
자산매각이 쉽지 않다.

서울은행과 제일은행은 아직 매각되지 않고 있다.

대다수 한국인들은 이 은행들이 두번이나 파산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시스템도 붕괴되고 있다.

한국정부는 죽어가고 있는 기업의 수명을 연장시켜가며 금융기관을 강탈하고
있다.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경제에서는 부실기업이 정리돼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된다.

공식적으로 파산된 한보 삼미그룹 등은 금융기관의 지원으로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빅딜(Big Deal)은 배드 딜(Bad Deal)로 흐르고 있다.

빅딜에 참여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계열사들은 과잉부채와 과잉노동력
과잉설비에 시달리고 있는 기업들이다.

대규모 사업맞교환을 해봤자 규모의 경제도, 시너지효과도 창출될 수 없을
것이다.

돈의 흐름도 경색돼 있다.

시중자금은 은행 투신사 등 금융기관내와 5대기업 중심으로만 돌면서
고여있다.

대기업들이 죽어가는 계열사들을 살리거나 막대한 부채를 갚으려고 자금을
독식하고 있다.

정작 자금이 절실한 건전한 기업들은 신용붕괴 상태에 빠졌다.

결국 한국이라는 주식회사는 다음 세가지 시나리오의 실현여부에 따라
경기후퇴와 불황의 시소를 타게 될 것이다.

제1 시나리오는 구제불능 기업의 파산을 과감히 유도하고 공적자금을 투입,
은행 등 금융기관을 국유화하는 것이다.

최선의 방법이다.

한국정부의 정책결정자들은 이런 본질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수용하지
않으려 한다.

두려움만 있지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제2 시나리오는 시장의 힘이 정부의 노력을 압도하는 경우다.

은행예금인출사태, 5대기업의 디폴트(지급불능)상황, 공황에 따른 외국
투자자들의 한국탈출 등 최악의 시나리오다.

제3의 시나리오는 한국경제의 일본화다.

일본처럼 임시방편책을 통해 위기를 모면, 현재의 불안한 균형을 지속시키는
것이다.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금융시스템의 기초가 부식되며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 정리=김홍열 기자 come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