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초월(1913~1987)명창이 완창한 판소리 "흥보가"가 2장의 CD(신나라레코드)
에 담겨 나왔다.

박명창이 완창한 "흥보가"가 음반에 실려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박명창의 완창소리로 남아있던 것은 "수궁가"가 유일했으며
"춘향가"의 도막소리가 유성기음반에 남아 있다.

이 CD는 박명창의 전성기 때인 50세 중반 시절의 소리를 그대로 전하고
있다.

계면조(슬프게 부르는 창법)를 거의 극단까지 추구하는 창법, 탁하고
거칠면서도 맑고 깨끗함이 어우러진 곰삭은 소리의 특성이 잘 드러나 있다.

박명창은 가왕 송흥록에서 시작돼 송만갑-김정문으로 계승된 동편제 소리의
맥을 이은 소리꾼.

박명창은 김정문에게서 "흥보가"를 배웠고 역시 송만갑의 제자였던 박봉래,
박중근에게서 "춘향가"를 전수받았다.

1930년 전주에서 열린 전국 남녀 명창대회에서 17살의 나이로 장원을
차지하면서 이름을 떨쳤다.

이후 박록주 김소희와 더불어 여류 판소리계를 대표하는 3대 명창으로
군림했다.

특히 "춘향가"중 "암행어사 내려오는 대목" "춘향모 상봉대목" "옥중 춘향
상봉대목"은 누구도 흉내낼수 없을 정도로 잘 불렀던 것으로 유명하다.

박명창은 64년 "춘향가", 67년 "수궁가"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에앞서 54년에는 김소희 박귀희와 함께 국악예술학교의 전신인 민속예술원
을 세워 후진을 양성했다.

박초월의 완창소리는 조통달 최난수 김수연 등에 이어져 불리고 있다.

< 김재일 기자 kjil@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