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 인간이라면 인간이 만든 최고의 작품은 자동차가
아닐까.

인간이 바퀴를 발명한 지 약 6천년이 지나 1770년에 이르러서야 프랑스의
NJ큐노가 제작한 중기기관차가 역사상 처음으로 기계의 힘을 빌어 주행에
성공했다.

그후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면서도 가솔린자동차가 탄생한 1920년대 초까지
자동차는 귀족 또는 돈 많은 사람들의 전유물일 정도로 그수가 드물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선 보인 자동차는 1903년 고종황제가 타기 위해
수입된 미국제 승용차 "포드"다.

민간인으로서 제일 먼저 자가용을 소유한 사람은 천주교주 손병희
선생이었다.

이런 것만 보더라도 그 당시 자동차는 특권층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다.

6.25전쟁시 피난길에서 선망으로 바라보아야 했던 자가용과 흙먼지를
일으키며 위세 당당하던 군용트럭, 지프는 여전히 보통 사람들의 삶과는
거리가 먼 꿈속의 물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불과 반세기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우리의 삶과 거리는 온통
자동차로 뒤덮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동차들이 왼쪽 눈을 깜빡이고 있다.

잠시 후 좌회전 신호가 떨어지자 자동차들은 일제히 원을 그리며 왼쪽으로
돌아선다.

이윽고 덜커덕 빨간 불이 들어서자 차례를 기다리던 가로차선의 자동차들이
움찔움찔 멈춰 서더니 일제히 세로 차선의 자동차들이 1백 미터 경주라도
시작한 양 쏜살같이 내달린다.

이렇듯 자동차가 만들어내는 동선은 예술에 가깝다.

각각의 차가 마치 조형예술의 한 부분을 장식이라도 하는 듯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 롤(Rule)이 깨진다거나, 그 질서가 흐트러지면 조금 전의
그 아름다움은 온데 간데 없고 온통 불균형과 무질서 그 자체가 되고 만다.

자동차는 우리 인류 문명과 함께 발전해왔다.

언제나 우리의 생활 속에 함께 해왔고 우리와 함께 호흡해왔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절감하고 있는 서울의 교통문화 부재, 교통철학의
부재는 바로 우리 서울 시민의 어둡고 추한 모습에 다름 아니다.

우리 손으로 만들어 낸 자동차, 그 자동차가 만들어 내는 서울의 거리는
다름 아닌 바로 우리들의 손에 달려있다.

< sjkim@hyundai-motor.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