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외환위기를 맞은지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간다.
지난 1년은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숨가쁘게 보낸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경제위기극복을 위해 구조조정과 개혁이라는 이름의 여러가지 고통
스러운 정책과 조치들이 시행되었다.
말도 많고 이해관계도 유난히 복잡한 한국사회에서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해낸 것이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동안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우리가 경험한 토론과 의견수렴 과정은
그야말로 상처와 갈등으로 점철된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토론이 논리와 전문성 보다는 감정과 이기주의에 지배당한 경우가 더 많았
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문제 해결이 기세 싸움과 자존심 대결로 변질되어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지금 5대 그룹 구조조정을 놓고 정부와 재계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줄다리기
가 또하나의 전형적인 사례다.
지금 이것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는지,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은 없고 그저 미운 놈 벌주기식으로 언제까지
무엇을 해라, 못하겠다식의 자존심 대결로 변질되어 급기야는 재벌 해체론
까지 거론되고 있다.
지난해 이맘때 기아자동차 처리를 둘러싼 갈등이나, 금융개혁입법의 처리
과정과 똑같은 일이 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노사정위원회 운영도 그렇고, 은행이나 공공부문 구조조정에서도 도대체 왜
개혁을 해야하고 무엇이 나라를 살리는 길인지는 외면한채 너죽고 나죽자는
식의 갈등 양상으로 변질된 경우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개혁의 지연과 왜곡으로 인해 우리가 국가적으로 치른 대가는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지금 IMF체제도 우리의 그런 성향이 누적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이러한 억지주장과 기세싸움의 와중에서 국민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소위 경제전문가라는 사람들조차 의견이 갈려 있다는 점이다.
국내외적으로 경제학자들 간에 일치된 의견이 없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지금 경제개혁 논의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한국 경제전문가
집단의 의견 차이는 통상적 수준을 넘어 원활한 구조조정에 장애가 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들간의 의견 차이를 실제보다 더 커보이게 하는 것은
경제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경제전문가임을 자처하면서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경제전문가라면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경제원리를 설명하고 이를
전파해야 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국민정서나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일일지라도 경제원리와
원칙에 맞는다면 주장하여야 하는 것이 진정한 전문성인 것이다.
경제전문가를 자처하면서 경제원리를 부정하고 비효율을 부추기는 주장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국민들이 지금 경제전문가에게 기대하는 것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전문
지식과 지혜인 것이다.
사이비 경제처방들은 대부분 모든 일에는 대가가 있다는 경제의 기본원리를
무시하거나, 국민정서에 영합하여 그릇된 환상을 심어주고 경제문제에 정치
논리가 개입되도록 하는 것들이다.
문제는 이런 비전문적 현실 진단과 처방들이 국민들로 하여금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하도록 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경제개혁을 다시 갈등과 대립구조
속에 좌초시킬 수 있다는데 있다.
경제현상을 진지하게 공부하고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어느 것 하나 간단하고 명쾌한 해답을 가진 경제문제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지금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경제문제는 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지금 한국경제는 중병이 들어있다.
이 병은 사이비 전문가들이 나서서 민간요법이나 푸닥거리 같은 방법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앞으로 우리경제 체질을 강화하고 경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많은 진단과
처방이 제시될 것이다.
어느 주장이 전문적인 주장이고 어느것이 사이비인지 잘 가려 들어야 할
것이다.
달콤하고 정서에 맞는 처방일수록 사이비 처방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