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정책 기조가 지금까지의 다자간통상협상 위주에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바뀌는 조짐이 보여 주목된다. 김종필 총리 주재로 지난 5일 열린
대외경제조정위원회에서 우선 칠레 터키 호주 남아공 등 산업구조나 교역
조건이 우리와 상호보완적인 나라들과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 구체적인 예다. 정부는 별다른 일이 없다면 김대중 대통령이 중국방문을
마치고 오는 17~18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 참석할 때 칠레와 사상 처음으로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확정지을
예정이다.

이같은 통상정책의 방향전환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무역의존도가
매우 높고 그동안 수출주도형 성장정책을 추진해온 우리로서는 날로 높아지는
보호무역주의 장벽과 이에따른 통상마찰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책 마련이
무엇보다 시급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 통화위기가 발생한뒤 러시아
중남미 등으로 금융위기가 급속히 확산되자 통상마찰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 최근 국산 철강에 대한 미국의 덤핑제소나 국산 가전제품
에 대한 유럽연합의 수입규제가 단적인 예다.

그동안 세계 각국은 관세.비관세장벽을 낮추고 자유무역을 확대하기 위해
케네디라운드 도쿄라운드 및 최근의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등 다자간통상협상
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게다가 통상협상에서 수세적인 입장에 설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양자간협상보다 다자간협상을 선호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자간협상의 타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다 IMF사태 이후 외자유치가
시급해진 우리 처지에서는 자유무역협정 체결이라는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불가피하다.

정부가 자유무역협정을 긍정적으로 보게된 또하나의 배경은 날로 확산되는
지역주의 탓이 크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에도 아랑곳 없이 북미자유
무역협정(NAFTA) 등을 비롯한 지역내 자유무역협정은 90년대에만 68개나
체결됐고 지난해말 현재 1백45개에 달하고 있다. 물론 지금의 지역주의는
역외국가에 대해 배타적인 차별정책을 폈던 지난 30년대와는 달리 개방적인
지역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비회원국가들은 차별대우를 피할 수 없다.

정부는 칠레를 비롯한 몇몇 나라들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추진이 21세기를
맞는 우리경제의 보다 개방적인 자세를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대외홍보 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 국가들을 거점으로 한 무역 및 직접
투자 등 실질적인 경제협력 확대라는 성과를 거두는 일이다. 그러자면 산업
구조조정 및 경제규범의 선진화를 서둘러야 하며 협정체결 대상국을 사전에
신중하게 검토한뒤 선정해야 하겠다. 아울러 일본 중국, 나아가 미국이나
유럽 등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도 중.장기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7일자 ).